brunch

매거진 사람 냄새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실배 Nov 01. 2020

미션, '낙엽을 주워라' 클리어

아내의 등짝 스매싱에 오금이 저린다.

아내의 지시가 떨어졌다. 둘째가 다음 주 수요일까지 낙엽을 가져오는 학교 숙제가 있다고 했다. 이걸 인제 이야기했냐고 둘째에게 등짝 스매싱이 올라오는 찰나, 덜컥 내가 해결하겠다고 답을 했다. 이를 어쩌지. 맞다. 회사 주변에 단풍나무가 떠올랐다. 마침 일도 있었다.

주말 아침, 일찍 회사에 출근 후 부리나케 일을 마무리했다. 비가 잠시 그쳤길래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낙엽이 바닥에 많이 떨어져 있었다. 최소 가지 종류를 가져와야 했다. 쉽지가 않았다. 이미 곳곳에 상처가 많이 나고 상태가 좋지 못했다. 마음이 조급했다. 아내의 거대한 손바닥이 떠올랐다. 고개를 좌우로 크게 저은 후 먹잇감을 찾아 나섰다. 한참을 돌아다닌 후 그나마 괜찮은 것을 모아 사무실로 가져왔다. 휴지로 빗물을 닦고 잠시 말렸다. 그제야 '휴'하는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늘 요놈의 주둥이가 문제다.

책상 유리 위에 모아 놓고 감상하니 같은 모양이라도 물드는 정도에 따라 그 빛깔이 모두 달랐다. 자연은 어쩜 이리 아름다운 색을 만드는 걸까. 알록달록한 모습을 따라 잠시 아스라한 추억 속으로 빠졌다.

초등학교 때, 가을이 되면 늘 낙엽 모아 오는 숙제가 있었다. 집 주변을 돌아다니며 주으러 다녔다. 한 손 가득 가져와 두꺼운 책 사이사이에 끼워놓았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면 바싹 말랐다. 그리고 코팅을 씌우면 멋스러운 책받침이 되었다. 그중에서도 마음에 드는 것을 돌라 잎사귀 모양대로 잘라 책갈피도 만들었다. 나름 문학 소년이었기에 책마다 꽂아놓고 나중에 읽다 우연히 발견하며 기뻐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었다. 간혹 가다 낙엽에 글씨를 쓰는 친구도 있었지만, 왠지 유치한 듯 보여서 하지 않았다. 그저 낙엽 하나만으로도 누리는 기쁨이 참 많은 시절이었다.

가져온 낙엽을 둘째 교과서 사이에 놓았다. 수요일쯤 되면 잘 마를 것이다.

둘째에게 책갈피를 하나 만들어줄까? 책 속에 몰래 숨겨 두는 것도 괜찮겠다. 나중에 발견하면 얼마나 기뻐할까.

이왕 하는 김에 내 것도 하나 만들어야겠다. 얼마 전 이슬아 작가의 신간  '부지런한 사랑'을 샀다. 글쓰기 스승과 제자와의 이야기라 낙엽 책갈피와 잘 어울릴 것 같다.

가끔 이렇게 아이와 같은 추억을 공유할 때가 있다.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은 있기 마련이다. 그럴 때가 참 좋다.

그나저나 미션 클리어~! 등짝 스매싱 워워.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은 라떼처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