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콘서트

by 실배

요즘 딸아이는 싱그러운 봄 그 자체다. 눈은 바다가 햇살을 맞은 것처럼 반짝거리고 뺨은 첫사랑을 만난 듯 발그레하다. 바로 첫 콘서트를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아빠로서 축복해주어야 마땅하나. 마냥 그럴 수 없는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바로 딸과 나의 듀엣 콘서트이기 때문이다.

며칠 전 딸아이가 오빠 방으로 나를 다급히 불렀다. 지금 춤 연습 중인데 봐달라고 했다. 오케이. 이불 위에 앉아 베개를 떡하니 무릎에 올려놓고 볼 준비를 하고 있는데. 글쎄.

"아빠. 내가 하는 것 잘 봐. 아빠도 해야 하니깐!"

엥. 내가? 나는 타고난 3치다. 길치, 박치, 몸치. 길치는 내비게이션 덕분에 해결. 박치는 노래방을 1년에 한두 번 가려나. 가면 자막이 있으니 가끔 아. 아. 하고 박자를 곧잘 놓치지만 뭐. 그런데 몸치는. 다행히 이젠 춤을 출 일이 없기 때문에 이마저도 극복했는데 난데없이 춤이라니.

딸아이의 춤은 춤이라기보다는 율동 같았다. 음. 종류는 3가지 정도였다. 먼저 첫 번째 춤은 '호호'이다. 스케이트 타는 동작과 비슷하다. 오른발을 살짝 앞으로 구부리고 왼발은 뒤로 죽 펴고 오른팔을 뒤에서 앞으로 흔들며, 덩달아 머리도 같이 흔들어야 한다. 여기서도 법칙이 있다. 절대 오른손이 엉덩이 선 앞을 넘으면 안 된다. 그러면 바로 불호령이 떨어진다.

"아이. 아니. 아니. 아빠 봐봐. 손은 절대로 여기 이상 가면 안돼. 알았지!"

'아니. 모르겠어. 사실 아빠는 혈압이 높아. 머리를 심하게 흔들면 어지러워.'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 굴뚝같지만. 눈에 입체 영상으로 펼쳐질 딸아이의 실망하는 모습이 그러져. 차마 말은 못 하고. 일단 열심히 몸을 흔들었다. 그런데 희한하게 하면 할수록되네. 중간중간 딸아이의 칭찬도 묘하게 기쁘고.

그런데. 이 춤은 흔들기를 마치면 잠시 동작을 그대로 멈추고 오른손을 모두 편 후 엄지부터 손가락을 접으며 함께 원, 투, 쓰리, 포, 파이브를 외쳐야 한다. 여기서 포인트는 사랑 가득한 표정이다. 이건 도저히 못하겠다. 딸아이야 짓는 표정 모두가 사랑 가득이지만, 나는 세파에 찌든 중년 남자인데. 어떻게 그 표정을 딸아 제발. 하지만 매정한 그녀는 용서가 없다. 최대한 근접한 표정을 지어본다. 입고리와 눈 고리는 올리고 로또 1등 당첨을 이미지 트레이닝하며 활짝.

몇십 번의 연습으로 어느 정도 1번 춤은 패스. 그런데 살짝 화가 나는 건 2번, 3번 춤은 매일 바뀐다. 본인이 까먹는 것이다. 그리곤 매번 새로운 율동을 만들어 낸다. 이거 어쩌지. 급기야 엊그제 엄마한테 쪼르륵 달려가 토요일에 아빠와 함께 공연한다고 공표하였다. 그리곤 혼자 흥분되어 어쩌지 하고 있다. 늙은 아비 속은 아는지 모르는지 옷도 새로 사야 한다는 것을 간신히 워워 시키고. 청바지에 흰 티로 통일하기로 했다. 얄미운 첫째는 콘서트를 모두 동영상으로 찍겠다고 딸아이와 약속했다. 왠지 지난번 게임 안 시켜준 나에 대한 복수다.

어제도 퇴근 후에 연습했는데 또다시 2번, 3번 춤이 바뀌었다. 아이의 장기기억 능력을 탓할 수도 없고 오늘은 아예 동영상으로 찍어야겠다.

벌써 내일이다. 크리스마스 때 애인 없으면 자고 그날을 지운다는데. 그럴 수도 없고. 한 편. 뭐 해서 안 되는 것이 있겠어라고 합리화 기제를 발동한다.

오늘 퇴근해서 열심히 연습해서 내일 가족에게 큰 웃음 한번 건하게 선사하자.

문득 찾아온 딸아이와의 콘서트. 이래서 여름이 쓱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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