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조건은 꼭 돈이 아니야.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

by 실배

며칠 전 회사에서 친한 후배가 둘이서 점심을 먹자고 했다. 함께 식사하던 중 갑자기 후배가 질문을 던졌다.

“계장님. 행복의 조건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뜬금없는 질문에 당황했다. 순간 말문이 막혔다. 질문한 이유를 물어보니, 행복의 조건에 대해서 글을 쓰고 있는데 조언을 구하고 싶다고 했다. 밥 먹던 숟가락을 내려놓고, 골똘히 생각에 빠졌다. 먼저 나에게 있어 행복의 조건은 무엇일까를 떠올려 보았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 좋은 취미활동을 하는 것 등 몇 가지가 떠올랐다. 후배는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행복의 조건이라고 생각했다. 역시 독실한 기독교인다운 생각이었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죽음에 대한 공포를 갖고 있고,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여 불행에 빠진다는 것이었다. 물론 나도 기독교인이지만, 행복의 조건 전부를 죽음과 결부시키는 것에는 동의하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는 죽음의 공포를 생각조차 할 여력도 없이 하루를 힘겹게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결국, 행복의 조건은 상대적인 것 같다.

행복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과연 행복이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하는 철학적 사유로 점점 빠져들었다. 둘 다 삶은 살면 살수록 더 고통스럽다는 것에 동의하였다. 이런 고통스러운 삶에 ‘행복’이라는 허상조차 없다면 살아질 수 있을까. 혹시 상상 속 동물 같은 '행복'에 대해서, 인간이 열심히 의미 부여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후배는 계속 죽음의 문제를 행복의 조건에 넣고 싶어 했다. 나도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에 동의하였고, 대신 후배에게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을 들어보길 권유했다. 차라리 행복의 조건을 결정짓는 것보다 행복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것이 나아 보이긴 했지만.

퇴근 후 집에 와서 아내에게 후배와 있었던 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궁금해졌다. 과연 아내의 행복의 조건은 무엇일까.

“여보. 행복의 조건은 무엇일까?
“당연히 돈이지. 돈이 있어야, 우리 아이들 교육도 더 잘할 수 있지. 내가 요즘 애들 학원비 때문에 골머리 썩는 거 안 보여? 돈은 쥐꼬리만큼 벌어 와서는 행복 타령이야.”

갑자기 행복의 조건에서 내 월급 얘기로 빠질까. 왠지 큰 불똥이 튈 것 같아서, 서둘러 대화를 종료하고 방으로 피신했다. 열심히 숙제하고 있는 아들 옆에서 허탈함에 빠졌다. ‘오늘 회사에서 후배와 나누었던 그 철학적 사유들은 다 무엇이란 말인가. 결국, 행복의 조건은 돈이었던 것인가.’ 강력한 부정을 하고 싶었으나 맘처럼 되지 않았다. 아내 말처럼 돈이 많다면 당장 행복해질 수 있는 것들이 참 많았다.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교육 등등. 하지만 소심한 저항은 하고 싶어 졌다. 마음속에 확성기를 켰다.


‘세상에는 돈 말고도 중요한 것이 많고, 나처럼 돈에 대한 개념 없는 인간들도 나름 행복하게 잘 살아가고 있다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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