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 남편, 첫째 아내
외모가 아닌 역동이라는 새로운 가설.
아내에게 매력을 느낀 것은 화려한 모습이라 생각했다. get mountian, huma를 거리낌 없이 입고 다녔던 나와 달리 대학원 후배였던 아내는 늘 짧은 미니스커트에 한여름의 뜨거운 햇살 같은 미소를 지녔었다. 함께 있으면 그 기운이 전해져 마음이 두 톤은 밝아졌다. 그녀와 연인이 된 후, 불나방처럼 환한 불빛에 빠져들었다. 그 끝은 결혼이었다.
“신 실배, 똑바로 안 할래. 플라스틱은 분명 이쪽이라고 했는데, 스티로폼에다 넣으면 어떻게. 하여튼 간에 쯧쯧쯧.”
신 실배? 내가 자기보다 세 살이나 많은 오빠인데. 어디서 반말이야. 저 아래서 무언가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오빠한테 신 실배가 뭐야. 혼나 볼래.”
“오빠는 개뿔. 차라리 아들 하나 더 키우는 것이 낫지.”
지은 죄가 있으니 더는 말도 못 하고 슬금슬금 방으로 향했다. 아. 가련한 인생이여. 결혼 전 30년간 나름 귀여움 많이 받은 막내아들로 살았는데, 이런 구박 대기로 전락하다니. 삶은 집 앞 문방구 뽑기처럼 예측할 수 없구나.
슬픔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하긴 혼나도 싸지. 분리수거도 하나 똑바로 못하는 팔푼이 인걸. 이럴 줄 알았으면 이것저것 배워 둘걸. 어머니와 누님들의 비호 아래 그저 말 만 잘 듣는 순둥이 아들이자 동생 역할만 했다. 그나마 결혼해서 아이가 태어나고 주말에 일하는 아내 덕에 밥, 빨래, 청소의 초급단계를 겨우 지났다.
그에 반해 아내는 뭐든지 척척 이었다. 화려함 뒤에 숨겨진 장녀 DNA가 가득했다. 집안의 대소사에 목소리를 높였고, 일하는 장모님을 대신해서 처남도 살뜰하게 챙기며 엄마 역할을 다했다. 여행도 좋아하고, 잘 노는 모습에 걱정했었는데, 결혼해서는 착실한 아내를 거쳐서 태어날 때부터 엄마였던 것처럼 아이들을 빈틈없이 돌보았다.
새로운 가설이 떠올랐다. 아내에게 끌렸던 것은 겉모습이 아닌 잘 챙겨주는 것 때문이었을까. 생각해보면 연애 때부터 아내에게서 어머니 냄새가 났다. 결국 우리의 결혼은 같은 동네에 살았던 근접성, 전공이 같은 유사성에 이런 관계의 역동이 어우러진 총체적 결과물이었다.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 아이들 재운 뒤 산타 선물까지 챙기고 나서야 지친 몸을 푹신한 이불속에 넣을 수 있었다. 눈이 감길락 말락 한 아내를 그윽하게 바라보았다.
“여보, 나랑 결혼한 가장 큰 이유는 뭐야?”
“피곤해 죽겠는데 뭐래. 쓸데없는 소리 말고 자.”
“그래도 하나만 이야기해봐.”
“착한 줄 알고 결혼했는데, 완전 속았어. 그때 잘해준 실배는 어디 간 거야.”
홱 하고 돌아선 아내를 뒤에서 슬며시 안았다. 잔뜩 몸을 털더니 이내 잠잠해졌다. 머리카락 사이로 삐죽이 나온 흰머리가 유난히도 하얗게 보이는지. 안쓰러운 마음에 괜스레 한 번 쓰다듬었다. 이럴 땐 세상 큰 오빠가 된 것 같았다. 이내 새근새근 숨소리가 들렸다.
겉모습이었던, 성격이었던, 역동이었든지 간에 부부가 되었고, 강산이 변하도록 함께 했다. 우리의 관계는 남편, 아내, 아빠, 엄마, 아들, 딸 등 상황에 따라 수시로 변했다. 그 시간을 어찌 글로 다 담을 수 있을까. 팽팽했던 피부는 어느새 금이 가기 시작했고, 짙은 머리카락도 조금씩 그 빛깔을 잃어간다. 처음엔 장밋빛 미래를 꿈꾸었다면 지금은 노을빛 종착역을 그렸다.
이 사람과 함께여서 늙어간다는 것은 그리 슬프지 않다. 중년을 지나 노년으로 가는 길목에서도 이렇게 투닥거리며 하루를 열심히 살아낼 것이다. 나도 그때쯤에는 아내에게 듬직한 오빠가 되지 않을까. 그런 희망을 품고 꿈나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