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받는 아빠는 안하려고.
아빠다운 모습은 무엇일까?
우당탕탕. 엉덩이가 하얀 바닥을 스치며 진한 파열음을 만들었다. 위에서 내려다보며 사악한 미소를 짓는 녀석이 보였다. 전쟁의 시작이었다.
크리스마스이브 홈 파티 중이었다. 스테이크에 와인을 마시며 천상 위를 걷고 있었다. 목마르다며 물을 달라는 아들의 부탁을 받고 정수기에 간 사이 계략이 벌어졌다. 물을 주고 앉는 순간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통증은 꼬리뼈 세 마디쯤에서 멈췄다. 깔깔대는 아들의 목덜미를 부여잡아 침대에 내동댕이쳤다. 부자라는 단어는 둘 사이에 존재하지 않았다. 치고, 박고, 깨물고, 할퀴고 만신창이가 되었다. 침대에 떨어져 맨바닥에서 뒹굴고 있는 우리에게 아내는 “그만해”라고 소리쳤다. 순간 얼음이 되어 슬금슬금 주방으로 돌아왔다. 분이 털 풀렸으나 이쯤 해서 그만두어야 함은 다년간의 경험으로 알고 있다.
“오빠. 어떻게 하는 짓이 얘랑 똑 같아. 아빠답게 행동하면 안돼?”
아내의 폭풍 훈계가 이어졌다. 대꾸도 못 하고 죄인처럼 접시에 코를 박았다. 식사를 마치고 이번에 새로 구입 한 빔으로 거실에서 영화를 시청했다. 크리스마스에는 꼭 보아야 할 영화 ‘나 홀로 집에’였다. 명작은 시간의 흐름도 거스른다. 옆에서 깔깔대며 몰입하는 아이들의 표정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빠다운 것이 무엇일까?
어릴 때 아버지의 환한 웃음을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자식에게 표현하는 것은 팔불출 같다고 생각하셨다. 말도 없이 묵직한 아버지의 존재는 다가갈 수 없는 거리를 만들었다. 술을 잔뜩 드시고 오셔야 담아둔 애정을 과하게 풀어 놓곤 했었다. 아버지께 사랑한다는 말을 처음 들었던 것도 군대 입대해서 훈련병 때 받은 편지 안에서였다. 그것이 뭐라고 화장실에 들어가 펑펑 울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연세가 드시고 요즘 끝도 없이 이어지는 말씀을 보고 있노라면, 그때 좀 살갑게 대해 주지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 긴 시간을 어떻게 참고 지내셨는지. 그때부터 결심했다. 나중에 결혼해서 아빠가 된다면 원 것 표출 하리라.
아들이 찾아온 것은 결혼 후 6개월 만이었다. 1년간의 기다림 끝에 우리에게 찾아왔다. 시간이 많이 흘렀음에도 떨리는 두 손으로 받아든 아이의 모습은 잊을 수 없다.
아이가 자라면서 계획했던 프로젝트를 실행했다. 사랑한다는 말을 수시로 해주었고, 늘 상 몸으로 부대끼며 놀았다. 그런 영향일까 사춘기가 되었어도 내 무릎에 앉아 조잘대고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못할 땐 한판 하자며 달려든다. 그 모습이 과해서 때론 너무 격 없이 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시험이 들 때가 있다. 얼마 전 아내도 진지하게 그 부분에 대해서 걱정했다. 편하게 대하는 것은 좋지만 적절한 선은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거울 보고 연습을 해보았다. 목소리는 한 톤 낮추고, 근엄한 표정으로 “아들, 요즘 걱정거리는 없니?”라며 말하는 순간 온몸 가득 닭살이 돋아 꼬꼬댁 소리 나오는 줄 알았다. 역시 아니야. 사람이 안 하던 짓 하면 큰일 난다고 하던데, 일 치르기 전에 그만 두어야겠다. 그리곤 방에 몰래 찾아와 뒤에서 덮친 아들과 한바탕 굴렀다.
뭐, 어른 같은 아빠가 아니면 좀 어때. 지금처럼 친구같이 지내며 편하게 다가가면 된 거지.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도 소주 한 잔 하며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그때 가서도 사랑한다는 말을 서스럼없이 할 수 있는 아빠가 되고 싶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고 본인 만의 세상이 생기면 멀어지는 것은 숙명이리라. 할 수 있는 동안만이라도 최대한 표현하고 싶다. 세상에 많고 많은 아빠 중에 나 같은 아빠 하나쯤 있다고 별일 있겠어.
존경받는 아빠는 안되더라도 친구처럼 편한 아빠, 내가 끝까지 간직하고픈 아빠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