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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람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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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Feb 05. 2021

그는 나를 웃게 만드는 사람.

점심 때면 들썩거리는 운동화

소년 같은 사람이다. 기쁠 땐 프레스티시모처럼 말의 속도감이 붙고, 슬플 땐 그라베처럼 느릿하면서도 깊은 감정이 전이된다. 그래서일까. 그의 말 한마디까지도 놓치고 싶지 않다.

그는 지나치게 솔직하다. 문제는 나에게까지 전염된다는 것이다. 마음속에 꼭꼭 숨겨둔 이야기까지 기어코 풀어놓게 만든다. 그리곤 대수롭지 않다는 듯 씩 미소를 짓는다. 그 순간 어려운 문제는 웃음에 날려 보낼 만큼 가볍게 변한다. 뭐야. 별것 아니었잖아. 그와 있으면 무장해제가 된다. 뭐 그리 무겁게 덕지덕지 달고 살았는지.

무언가를 계속 묻는다. 주로 이런 것이다. '오늘 하루 중 가장 즐거웠던 순간은?', '나에게 하루가 남는다면?', '기억에 남은 공간은?', '짜증 날 때 어떻게 하면 좋을지?' 잘 묻지 않는 질문들이다. 물론 모르는 주식이나 부동산은 아니라서 다행이지만, 답하기 민망할 때가 많다. 머뭇거리면 준비한 듯 본인이 먼저 풀어낸다. 그러면 나도 말할 수밖에 없다. 자꾸 듣고, 말하게 된다.

그를 기다리게 만든다. 언제 울릴지 모르는 메신저의 알람을 뚫어지라 쳐다본다. 만날 땐 주머니에서 맥반석 계란 두 개를 꺼낸다. 가끔 베지밀도 있다. 베푸는 데 주저 없다. 생각해보니 그는 늘 빚지게 만든다. 그러면서도 지금이 좋다는 말을 끊임없이 늘어놓는다. 같은 말을 반복해서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말을 지겹지 않게 만드는 마법이라도 부리는 걸까.

사실 그는 어제 나를 바람 맞혔다. 러닝화로 갈아 신는 순간이었다. 급한 약속이 생겼다고 했다. 슬리퍼로 이동하는 발이 슬퍼 보였다. 내일은 꼭 가자는 말에 속으로 '꼭이야'를 되뇌었다.

날이 추워졌다. 장갑에 귀마개까지 준비했다. 우리가 가는 길은 바람이 많이 분다. 아침에 사과를 반으로 자르고, 베지밀을 준비했다. 오늘은 내가 주어야지. 걸을 생각에 출근길이 덜 부대꼈다. 그를 보면 웃음이 나올 것 같다. 물론 커다란 미소를 먼저 만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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