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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Feb 07. 2021

눈먼 자들의 도시

인간은 선한 존재일까, 악한 존재일까.

눈을 뜨니 온통 세상이 빨갰다. 자고 일어나면 딱풀이라도 바른 듯 끈적한 느낌이 고통과 섞였다. 순차적으로 왼쪽부터 오른쪽까지 붙은 눈을 뜯어냈다. 그 순간은 지금 생각해 보아도 기괴했다. 침대에서 발버둥 치며 비명을 지르는 모습이란. 일주일 동안 눈을 뜨지도 감지도 못한 날의 연속이었다. 유난히도 더웠던 20대 초반의 여름, 예고도 없이 찾아온 눈병으로 불같은 기억을 품었다.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었다. 읽는 동안 그때가 떠올랐다. 볼 수 없는 상황에서도 살아내야 한다. 불편함도 하루 이틀 지나면 익숙함의 옷을 입는다.


갑자기 눈을 먼 사람이 생긴다. 그와 접촉한 주변 사람도 이내 눈이 멀게 된다. 눈이 먼 사람들은 병원에 수용된 체 군인들의 통제를 받는다. 그 들 사이에는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은 사람이 있다. 그녀는 눈 뜬 사실을 숨긴다. 혹여나 눈먼 자들의 노예가 될까 봐서. 처음엔 나름의 질서를 가지고 생활한다. 그러나 군인들이 제공하는 음식을 빼앗아 나머지 사람들에게 금품을 요구하는 무장 세력이 등장한다. 그들은 그 세계의 절대 권력자가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원래부터 시각장애인이었던 자가 그 조직의 핵심 인물이 된다. 점차 착취는 강도가 세진다. 성 상납, 폭력, 살인 등 읽기 힘든 구간을 마주했다. 책을 몇 번이고 덮었다가 열었다. 인간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까발리면 불편한 마음은 피할 수 없다.


눈먼 자들을 통제한 군대까지 모두 눈이 먼다. 첫 번째로 눈이 먼 사람과 의사, 검은 안경을 쓴 여인 등 몇몇은 탈출을 강행한다. 세상은 눈먼 자들로 가득했다. 오물을 가득 뒤집어쓴 채 먹을 것을 찾아다닌다. 장소만 바뀌었을 뿐 병원과 다를 바 없었다. 그 모습은 인간성을 상실한 좀비 같았다. 본능만 남은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시작된다. 과연 그들은 생존할 수 있을까?


흔히들 주제 사라마구는 마침표가 없는 작가라고 한다. 대화체를 별도로 구성하지 않고 문장 안에 나열해서 처음엔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미친 듯 몰입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책에서 손을 놓을 수 없었다. 다음날 출근임에도 자정이 지나서야 마지막 장을 넘겼다.


꿈을 꾸었다. 세상은 코로나에 걸린 사람(눈먼 자)과 코로나에 걸리지 않은 사람(눈 뜬 자)으로 나뉘었다. 서로 불신하는 사회 속에서 경멸, 혐오가 난무했다. 어제의 적은(코로나에 걸린 사람) 오늘의 우군(코로나에 완치된 사람)이 되었고, 수시로 그 반대가 되었다. 세상은 이분법적 사고만 존재했다. 나 역시도 군중심리에 이끌려 이리저리 흔들거렸다. 잠이 깬 후 내내 께름칙했다. 비단 코로나뿐 아니라 점점 양극단으로 치닫는 사회 속에 느끼는 피로감이 꿈에 투영된 것은 아닐는지.


코로나 시대에 이 소설이 시사하는 바가 컸다. 법, 질서, 규칙은 언제든 붕괴할 수 있다. 결국, 우리가 지키고 생존할 수 있는 것은, 타인을 좀 더 생각하는 인간성이지 않을까.

소설의 짙은 여운에서 빠져나올 때쯤 후속작인 ‘눈뜬 자들의 도시’를 읽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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