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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람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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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Feb 25. 2021

아무튼 바다

바다가 좋아졌다.

살다 보니 바다보다 산이 좋다. 언제든 등산화만 신으면 갈 수 있으니깐. 더구나 회사 근처에도 있어서 점심 때면 둘레길을 걸었다.


반면 아내는 한결같이 바다를 좋아했다. 연애 때도 계절이 바뀔 때에는 늘 가자고 졸랐다. 실상 가서는 특별히 하는 것도 없었다. 그늘막을 치고, 안에 들어가 바다를 보며 멍 때리는 것이 다였다. 뭐가 그리 좋은 걸까. 결혼해서도 여행지는 늘 바다 근처였다.


코로나 19로 인하여 어디를 가는 것이 부담이 되어 버렸다. 바다 고픈 아내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이래선 안 되겠다. 가까운 곳이라도 다녀오자. 사람이 덜 붐비는 평일에 가면 괜찮겠지. 회사에 하루 연차를 내고 강릉으로 향했다. 바다가 가까워졌다. 시든 꽃처럼 생기 없던 아내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드디어 도착했다. 마스크로 인하여 바다 내음을 오롯이 맡을 순 없어도 햇살을 받아 금빛 반짝이는 물결은 경이로웠다.

무얼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 기분은. 세상이 잠시 멈춘 듯 고요했다. 그저 바라만 보아도 마음의 평온이 찾아왔다. 아이들은 파도와 숨바꼭질하러 떠났고, 나와 아내는 그 자리에 서서 말없이 바다를 응시했다. 이런 거구나. 이래서 바다 바다 하는구나. 조금 알 것도 같네. 저만치서 둘째는 아내에게 손짓을 했다. 둘이 손을 잡고 걷는 모습은 그림이 되었다.

살짝 마스크를 내려 바다 냄새를 맡았다. 코 끝을 찌르는 짠내가 바다 다움을 더했다. 눈을 넘어 코로 전해져 생생했다. 어떤 것을 할 이유도, 왜 왔을까 하는 고민도 필요 없었다. 그저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을 담으면 그것으로 다였다. 이대로 더는 머물 수 없을 때까지 있다 돌아왔다. 


언제고 지금처럼 가고픈 어느 날 훌쩍 떠나야겠다. 그곳에 두고 온 동그란 발자국, 철썩거리는 소리, 끝없는 푸르름 모두 그리우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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