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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람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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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Feb 22. 2021

쓴 맛이 좋으면 어른인 거야.

과학적 근거는 전혀 없음

"어우 써. 무슨 맛으로 먹는 거야?"


주말, 점심을 먹은 후 아메리카노 한잔에 삶의 기쁨을 누리는 중이었다. 옆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아들이 궁금한 지 한 모금 마셔보겠다고 했다. 입을 쭉 빼고 홀짝 거리더니 이내 오만상을 찌푸렸다. 물로 입을 헹구더니 무슨 맛으로 먹냐고 물었다. 글쎄.... 쓴 맛 아닐까. 아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방으로 사라졌다.


어느새부턴가 쓴 맛이 좋다. 달달한 믹스 커피를 좋아했는데, 지금은 아메리카노가 좋다. 이왕이면 시큼 씁쓰름한 핸드드립 커피라면 더 좋고. 분명 입안에 쓴 맛이 도는데, 뇌에서는 행복 호르몬 세로토닌이 분비된다. 신기한 일일세. 반대로 단맛에는 점점 취약하다. 사실 나는 단  성애자였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어릴 때 동네에 수입 물품 파는 상점이 있었다. 가끔 어머니께서 그곳에서 초콜릿이나 사탕을 사 오셨다. 그중 이름은 모르겠는데, 알록달록한 무늬에 동그란 모양이 초콜릿처럼 생겼는데, 젤리였다. 입안에 넣으면 달콤함이 꽃 향기처럼 퍼졌다. 극강 달달함에 혀까지 얼얼했다. 씹으면 씹을수록 그 맛이 짙어졌다. 어머니는 이빨 썩는다며 많이 주지도 않았다. 하나 먹으면 아쉽고, 두 개는 서운하고, 세 번째는 벌써 그리웠다. 그때부터였다. 단 맛은 운명처럼 내 삶에 비집고 들어왔다. 너무 심취한 탓에 이에서 몇 번이나 경고를 보내왔으나 무시했다. 그래. 이빨은 갈아 끼우면 되지만, 이 아이들은 사라지면 슬프잖아. 먹고, 마시는 모든 것에 친구처럼 따라왔다.


그랬던 내가 단 맛을 멀리하고, 쓴 맛을 가까이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아내도 그렇다고 한다. 어느 순간부터 단 맛이 행복으로 전이되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물렀다고 했다. 심지어 어떨 땐 슬픔을 줄 때도 있다고 했다. 나도 그랬다. 내 의사와 상관없이 통일된 음료가 내 손에 쥐어질 때, 더구나 그것이 캐러멜 마키야토처럼 단 맛의 극치일 때. 누구를 줄 수도 없고 울며 겨쟈 먹기로 마시면 몸서리쳤다. 아니야. 이 맛이 아니란 말이야.


불쑥 어떤 가설이 머리를 스쳤다. 숱한 실패와 좌절을 겪고 나서야 쓴 맛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 그 시점은 바로 어른이 되서부터였다. 그거였어. 쓴 맛을 좋아하게 된 것은 이미 살아온 삶에서 수차례 맛보았기 때문이야. 그냥 저절로 좋아한 것이 아니었어. 과학적 근거도 없는 낭설이지만 나에겐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다. 앞으로 살면서 마주할 풍파 속에서 이제는 아메리카노를 넘어 에스프레소에 원샷, 투샷을 추가할 날도 머지않은 것인가.


쓸데없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중 아들이 방에서 나왔다. 입 안에 사탕을 가득 물고 있는 모습에 한마디 했다.


"너도 이제 곧 쓴 맛을 알 날이 얼마 남지 않았네. 그땐 어른이 되어있겠지."


"뭐래. 낮잠이나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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