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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Feb 28. 2021

살아 있어 사는 걸까, 살기 위해 사는 걸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보다 어려운 문제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풀리지 않은 문제가 있다. ‘뭣이 중한디?’라는 어느 영화 대사처럼 뭐 그런 것에 쓸데없이 에너지를 쏟느냐고 반문할 순 있지만, 이렇게 오랜 기간 답을 얻으려 노력하는 것을 보면 나름의 이유는 분명 있을 것이다.    

 

나에게도 오랜 기간 품어온 난제가 있다. 바로 살아 있어 사는 건지, 살기 위해 사는 건지다. 그런 고민으로 잠을 뒤척인 적이 많았다. 밤은 깊어 가는데, 눈은 멀뚱히 뜨며 머릿속을 부유하는 오만가지 생각으로 복잡했다. 그럴 땐 마치 창문 없는 방에 있는 듯 갑갑했다. 


마흔 넘도록 새로운 해를 맞이했어도, 여전히 모르겠다. 존재 자체의 의문은 때론 나를 바닥끝으로 밀어 넣었다. 3년 전쯤이었다. 어차피 죽음은 정해져 있는 것, 아등바등 살 필요가 있을까 하는 회의가 찾아왔다. 회사에서 죽어라 일해보았자, 때가 되면 소모품처럼 버려질 것이 뻔하지. 가족들도 언젠가는 떠나겠지. 결국, 삶은 혼자 왔다 갈 뿐이야. 그냥 대충 살다가 가자. 살아 있어 살아가야 한다 생각하니 몹시 슬프네.     


그때 읽은 책이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였다. 작가가 극한의 상황 속에서 살아남은 이유가 여러 가지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의미’가 가장 컸다. 이름 모를 나무를 아내라 칭하며 희망을 놓지 않았고, 유머를 통해 삶의 빛을 찾았다. 그 과정이 모두 살아야 할 의미를 찾는 과정으로 다가왔다. 책이 주는 메시지는 큰 용기를 주었다. 그래. 분명 나도 세상에 온 이유가 있을 거야.    

  

열심히 찾고 또 찾았다. 의미는 그리 먼 곳에 있지 않았다. 매일 일상을 글로 기록하고, 책을 가까이했다. 그런 과정 자체가 삶의 수동적인 객체가 아닌 능동적인 주체로 만들었다. 그렇다고 난제가 풀린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속에 매몰되어 소중한 하루를 흘려보내지 않게 되었다.     


어쩌면 풀 수 없는 문제에 오래도록 집착했는지도 모르겠다. 왜 그랬을까. 그러잖아도 걱정할 것 투성이인데. 그래도 그런 시간이 헛되진 않았다. 살아 있어 살든, 살기 위해 살든 열심히 살아낼 것이다. 삶의 주인은 누구도 아닌 바로 나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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