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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Mar 06. 2021

치명적인 너

절대 피해야 한다.

금요일 저녁, 소고기 먹는다는 소식에 한 시간 조퇴하고 집으로 달려갔다. 가는 길에 아내에게 와인도 부탁했다. 고기는 아이들의 급성장기를 고려한 특식이었다. 옆에서 덩달아 호강하게 생겼네. 불판에 지글지글 익어가는 소리와 코 끝까지 차오르는 고소한 향으로 입 안에 침이 가득 고였다. 와인을 따서 잔에 담았다. 우리는 먹는 동안 서로 말도 없었다. 그저 혀로 전해지는 맛에 집중했다.   

식사를 마치고 정리한 후에 나 홀로 2차를 갔다. 테이블에 앉아 브런치에 올라온 이웃 작가님의 글을 읽으며 와인을 마셨다. 귀에 꽃은 이어폰 너머로 재즈 음악이 흘렀다. 배는 두둑하고, 글은 아름답지, 노래는 사랑이니 술이 술술 들어갔다. 너무 무리를 했나. 눈에 돌이라도 얹은 듯 무거웠다. 잠시 침대에 누웠는데 잠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저녁 10시 5분이었다. 큰일 났다. 오늘은 새롭게 시작하는 '주말 아침 도서관' 오리엔테이션이 있는 날이었다. 참여하는 독서 모임에서 토요일 아침에 줌에서 모여 1시간 각자 책을 읽고, 이후에 소감을 나누는 것을 모집했다. 덜컥 신청해버렸다. 참석 안 하냐는 방장님의 문자도 와있었다.


벌써 5분이 지났다. 급히 핸드폰을 들고 아들방에 들어가 줌을 켰다. 머리는 산발하고, 잠옷 차림으로  추하기 이를 데 없었다.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설명을 들었다. 10여분 정도 진행 방식에 대해 듣고 끝났다. "휴"하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알람을 맞추고 바로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부담 때문이었을까.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새벽 4시쯤 깨서 멍하니 있다가 잠시 눈을 붙였는데, 알람이 울렸다. 벌써 아침 6시 50분이 다되었다. 급히 거실로 가서 줌을 켰다. 전 날 마신 술이 덜 깼는지, 하늘이 빙빙 돌면서 덩달아 글자도 따라 돌았다. 차가운 물에 세수도 하고, 따뜻한 차를 마시고 난 후에야 제자리를 찾았다. 방장님이 잔잔한 클래식 음악을 틀어주셔서 책에 몰입이 되었다.

내가 읽은 책은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이었다. 노트에 줄거리와 인상적인 구절을 적으며 정리했다. 1시간은 금세 지났고 돌아가면서 책과 내용을 소개했다. 내 차례가 돌아왔고, 주인공 '나'가 느끼는 공허함, 외로움에 대해 설명했다. 마지막에는 내 마음을 마구 흔든 구절을 낭독했다. 동거하는 여자의 딸에게 해준 말이었다. 마치 소설 전부를 대변한 듯했다.


내가 얼마나 모두를 무서워하는지. 무서워하면 할수록 남들은 나를 좋아해 주고, 남들이 나를 좋아해 주면 좋아해 줄수록 나는 두려워지고, 모두 한테서 멀어져야만 하는.
 

그냥 스쳐 보냈을 아침이 독서 모임으로 풍성해졌다. 진짜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는 기분이 들었다. 앞으로 3주간은 '주말 아침 도서관'에 참여할 예정이다. 절대 전 날 술은 금해야겠다. 일주일 중 유일하게 술이 허가된 금요일에 금주라 몹시 슬프지만, 더욱 좋은 일 기다리니 참아야겠지.  


독서 모임에 치명적인 너, 잠시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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