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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Mar 08. 2021

금요일은 설렘, 토요일은 순삭, 일요일은 불안

어디 잡히기만 해 봐. 놓아주나.

월요일 출근부터 금요일을 꿈꾼다. 일이 부쩍 늘어 평일 대부분을 야근하는 요즘, 주말만 보고 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월, 화, 수, 일에 치여 정신없이 보내면 어깨에 뭉친 근육들이 돌처럼 딱딱해져 어디 망치로라도 때려야 하나 싶다. 이젠 정말 못해먹겠네 라며 욕이 나올 때쯤 목요일을 마주한다. 책상 위로 일은 차곡차곡 쌓이지만, 내일이 금요일이기에 마지막 힘을 쥐어짠다.   

   

금요일은 출근하는 발걸음마저 가볍다. 여느 다를 바 없는 만원 지하철 속에서 몸은 인천 월미도 방방이 탄 것처럼 흔들대도 흥이 난다. 한 주의 끝이라는 암묵적 메시지가 직원 모두에게 퍼진다. 평소보다 전화도 줄고, 급히 처리하라는 업무 연락도 뜸하다. 오전에 대충 일 처리가 끝나면 점심이 되고, 오후엔 오매불망 퇴근 시간만 바라본다. 이상하게 오후 4시부터 시간이 잘 가지 않는다. 그때쯤 잠시 밖으로 나가 회사 주변을 한 바퀴 돈다.


시곗바늘이 5시 55분을 가르치면 서류도 정리하고, 컴퓨터 화면에 열기구처럼 떠 있는 창도 하나둘 닫는다. 1분 1초가 아쉬운 순간이다. 자칫 주저하다 열차를 놓치면 20분 이상의 차이를 만든다. 전철에 내리면 인근 편의점에 들러 만 원에 세계맥주 4캔을 산다. 평일엔 술 생각이 없다가도 불금에는 알코올이 마구 당긴다. 저녁을 먹으며 맥주를 곁들이면 세상 좋을 수가 없다. 이런 소중한 날을 그냥 보낼 순 없지. 단단한 각오로 밤샘까지 시도해보지만, 불같이 쏟아지는 잠에 금세 꿈 기차를 탑승한다.      


습관은 무섭다. 주말이라도 늦잠 자면 좋으련만, 눈을 뜨면 새벽 6시나 7시이다. 커피포트에 물을 끓여 연한 아메리카노에 책을 읽는다. 아침 해가 서서히 떠오르면 아내는 출근 준비를 시작한다. 토요일이 가장 바쁜 프리랜서 놀이치료사인 아내는 눈에 피곤이 한가득 담겨있다. 씻고 테이블에 앉아 화장하는 동시에 나는 아침 준비를 서두른다. 간단히 찬을 챙겨 둘이 밥을 먹고, 떠나보낸다. 개미 지나가는 소리조차 느낄 만큼 고요한 시간, 책에 한없이 빠진다. 이 순간이 영원이었으면 하는 바람과 달리 적막을 깨는 쿵쾅거리는 소리와 함께 아이들이 나타난다. 이제부터는 현실로 돌아온다. 점심을 차리는 동안, 둘째는 패드로 좋아하는 예능 프로그램을 켠다. 하하 호호 밥과 웃음을 버무려 먹는다.      


설거지를 마치고, 테이블에 앉아 노트북을 켠다. 주말엔 긴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 잡힌다. 누가 자판에 수면제라도 탄 듯 잠이 쏟아진다. 아직 반 페이지도 넘기지 못했는데, 소재 고갈이다. 쏟아지는 잠을 막으며 사라진 글감과 사투를 벌인다. 너는 어디에 있는 거니. 애달프게 불러 보아도 답이 없다. 잠시 쉬자. 아이들은 엄마가 두고 간 숙제는 할 생각도 없이 게임과 인형 놀이에 빠져있다. 다하지 못했을 때 나에게 떨어질 불똥이 두려워 먹히지도 않을 협박을 가한다. 레퍼토리가 뻔하다.


“엄마, 올 시간 얼마 남지 않았다. 꼭 하라고 아빠에게 신신당부했어. 나중에 혼나도 모른다.”     


허공 속에 메아리처럼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몇 번의 반복된 잔소리 끝에 무거운 엉덩이를 옮긴다. 우리는 테이블에 앉아 각자 할 일을 한다.   

  

한 것도 없이 벌써 저녁이다. 아내가 퇴근하고 돌아와 식사를 마치면 하늘은 먹색으로 변했다. 눈 한번 깜빡였더니 하루가 결승선에 다다랐다. 이건 반칙이잖아. 평일엔 그렇게 가지 않던 시간이 주말엔 가속 페달을 밟은 듯 순삭이다. 아쉽고, 또 아쉽다. 안녕이라는 인사도 하지도 못했는데, 새로운 날이 밝았다.     


일요일은 다음 날 출근한다는 부담으로 무엇이라도 해야 할 듯 조급하다. 전 같으면 가까운 곳에 바람이라도 쐬러 갔을 텐데, 코로나로 인해 그마저도 쉽지 않다. 배드민턴 채를 챙겨 가족들과 근처 공원으로 향한다. 즐거운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불안이 싹트기 시작한다. 내가 오기만을 벼르고 있는 일들이 눈앞에 그림처럼 펼쳐진다. 아니야. 아직 휴일이 끝나지 않았잖아.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털어내려 애쓴다. 얼마나 세게 붙었는지, 어지간해선 떨어질 기미조차 없다. 독한 녀석. 그렇게 무거운 마음으로 흐르는 시간 속에 몸을 맡긴다.     

 

침대에 눕는다. 노곤한 몸에 눈을 감고 잠을 청한다. 복잡한 심경으로 뒤척인다. 괜찮아. 내일은 내일의 내가 다 해낼 거야 라며 애써 마음을 다잡아 보지만, 쉽지 않다. 왼쪽, 오른쪽 반복해서 돌아눕다가 이제 더는 견딜 수 없을 때쯤 설 잠이 든다.     


다시 피 튀기는 전장 한가운데 섰다. 이번 주는 제발 포탄 대신 총알로만 끝나면 좋겠다. 차라리 휴일이 없으면 좋겠다. 내상이 너무 크잖아. 버티자. 시간은 흐르고, 꿀 같은 금요일은 반드시 찾아올 거야. 다음에 만나면 납치라도 해서 오래도록 곁에 두어야지. 어디 걸리기만 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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