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사람 냄새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실배 Mar 15. 2021

나랑 꽃 보러 가지 않을래?

봄에 꽃 보지 않으면 반칙

꽃이 좋아라. 나에게서 자주 나오는 말이다. 왜 좋을까 물으면 답은 못 하겠다. 자연스레 눈이 그쪽으로 향한다. 우리 집은 모두 꽃 알 못이다. 아내도 연애 때는 한 다발의 꽃에 벅찬 미소를 보냈었는데, 결혼 후에는 극강 실용주의 모드이다. 기념일 때마다 꽃은 절대 사절이라고 사전에 알려준다.

밖에서만 보면 아쉽다. 안에 데려오고 싶은데, 방법이 무얼까. 그래. 가랑비에 스며들기 전략이 필요해. 틈만 나면 꽃노래를 불렀다. 특히 감성 풍부한 둘째를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드디어 일요일 오후에 꽃시장을 사 보기로 했다. 양재까지 가기는 멀어서 검색해보니 영등포에 영신상가란 곳이 있었다. 규모는 비할 바 안되지만, 사진상으로 괜찮았다.

점심을 먹고 난 후 서둘렀다.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미세먼지가 최고 나쁨 수준이었다. 날도 따듯하니 걷기 딱 맞았는데. 아쉽지만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자리에 앉아 잠시 졸았더니 아내가 다급히 팔을 쳤다. 잘 못 탄 것이었다. 결국 내려서 걸어가기로 했다. 오래간만에 영등포 주변을 돌아보았다. 이곳만이 지닌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코로나의 여파인지 늘 북적거리던 곳이 한산했다. 10여 분쯤 걸었을까. 드디어 상가가 보였다.

꽃시장은 지하에 있었다.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규모는 작았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사장님께 붙잡혔다. 현란한 말솜씨에 이미 아내와 둘째는 반쯤 넘어갔다. 한 바퀴 돌며 구경하고 싶었지만 이미 게임은 끝난 듯했다. 눈앞에 이렇게 예쁜 꽃이 있는데, 누군들 안 그럴까. 전부 사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억눌렀다. 화이트데이 기념으로 꽃 선물을 주기로 약속했기에 선택은 둘째가 했다. 살구빛 수국과 분홍빛 안개꽃이었다. 이대로 돌아가기 아쉬워 주변을 둘러보았다.

돌아오는 길, 생각해보니 마땅한 꽃병이 없었다. 아내가 장 보러 간 사이 둘째와 사러 갔다. 이미 엄마에게 이야기를 들어 적당한 크기도 파악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할머니, 지나는 젊은 아가씨, 상점 사장님 모두 꽃이 예쁘다며 한 마디씩 했다. 둘째 어깨가 살짝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봄에 만난 꽃은 사람들 마음을 설레게 하는 마법이 있는 것 같다. 마트에 가서 아내를 만난 후 함께 돌아왔다.

꽃병을 깨끗이 씻고 물을 담아 꽃을 담았다. 그 자태가 우아했다. 어느 곳에 둘까 고민을 거듭하다 거실 테이블에 놓기로 했다. 시크한 첫째마저 눈길이 그곳으로 향했다. 민숭민숭했던 곳이 꽉 차 보였다.

그저 바라만 보아도 좋았다. 영원히 있으면 좋으련만. 있는 동안, 아름다움을 오래 간직해야지.

사람 욕심은 끝이 없다. 슬 양재 꽃시장을 가고 싶은 마음이 올라왔다. 이번에 어떤 작전을 써야 하나. 하나 떠오르네. 세뇌 전법이다.

"이것 봐. 꽃이 있으니 분위기 살잖아. 양재에는 더 많은 꽃이 있다니. 가보자. 응응?"


- 조금씩 장식한 꽃들 -

매거진의 이전글 주식 100억 부자의 제안을 거절한 그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