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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강아지 키울래.

엄마 먼저 설득해.

by 실배

얼마 전부터 딸에게서 '강아지'란 단어가 계속 나왔다. 친구랑 길을 가다 강아지를 보았더니 예쁘더라. 유튜브로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이 있는데 한 번 보아라. 핸드폰 사진 속 강아지가 예쁘지 않냐. 그런 모습에 신기했다. 사실 딸은 겁이 무척 많다. 줄이 묶여 있는 반려견을 보아도 놀라서 도망치기 바쁘다. 아내가 자주 가는 미용실에 세상 순한 반려견이 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다가가 머리를 긁어달라며 들이민다. 당최 짖는 것을 본 적도 없다. 하지만 딸은 그 순하디 순한 반려견을 보고도 기겁을 하고 줄행랑을 쳤다. 오히려 그 모습에 놀라 컹컹 거리며 딸을 쫓아가 울고 불며 한 바탕 난리가 났었다.


딸은 좋아하는 것을 넘어 급기야 지난주에는 키우고 싶다고 졸랐다.


"강아지 안 무서워?"

"무서워."

"그런데 어떻게 키워."

"엄마, 아빠가 계속 봐주면 되지."


말인지 방귀인지. 때마침 최근에 분양받아 키우는 지인이 있었다. 카톡방에 사진을 올렸길래 딸에게 전달해 주었다. 내가 보아도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퇴근하고 집 현관문을 열자마자 딸은 내 목덜미를 잡고 방으로 끌고 갔다. 다짜고짜 주말에 강아지 보러 가자는데, 간신히 워워 시켰다. 대신 분양소에 가보기로 했다.


검색해보니 늦게까지 하는 곳이 있었다. 전화로 예약을 했다. 딸에게 문자로 전했더니 설렘이 답문에 담겨왔다. 사실 지금 어떤 맘 일지 알고 있다. 나는 어릴 때 반려견을 키운 경험이 있다. 극구 싫다는 어머니를 누나와 단식 투쟁까지 벌이며 설득시켰다. 근처 살던 큰 삼촌네 진돗개 새끼를 분양받아 집에 데려왔다. 아직 젖을 다 떼지 않은 상황이라 예민했다. 우리는 암컷임에도 똘이란 이름을 붙이고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십여 년 간을 함께 했다. 그 긴 시간 동안의 추억은 글에 모두 담을 수 없을 정도이다. 그 당시 주택에 살아서 봄이 되면 마당에 나와 햇살을 받으며 꾸벅꾸벅 졸고 있는 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계절을 느꼈다. 겨울이 되어 눈이 오면 밖으로 나가 눈밭을 신나게 뛰어놀던 기억도 난다. 박스에 앉아 목줄을 잡으면 힘차게 달려 먼 곳까지 데려다주었다. 날이 많이 추우면 현관에 담요를 깔아 함께 지냈다. 지긋이 나를 쳐다보는 보는데, 개인지 사람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군대 입대 후 첫 휴가를 나왔는데 똘이가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께 여쭤보니 비가 많이 오는 날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부질없음에도 휴가 기간 중 똘이를 찾아 동네를 얼마나 헤맸는지 모른다. 어머니께서 개는 영물이라 죽을 때가 되면 떠난다는 말로 위로했다. 그때 얼마나 슬펐는지 모른다. 시간이 한참 지난 뒤 다른 반려견을 키웠는지 이상하게 똘이만큼의 정을 주지 못했다.


수요일 저녁, 서둘러 퇴근해서 딸과 함께 분양소를 찾았다. 입구에 들어서니 20대 초반 정도의 직원이 우리를 맞이했다. 편견일지 모르겠지만, 말투부터 가벼움이 느껴졌다. 손을 씻고 안으로 들어가니 좁은 철장 안에 조그마한 강아지들이 모여 있었다. 직원은 그때부터 입에 모터를 단 듯 현혹하는 말을 쏟아냈다. 딸은 이미 정신이 반쯤 나갔다. 무서움을 벗고 심지어 품 안에 안기까지 했다. 가녀린 생명의 떨린 숨소리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미 영혼까지 빼앗겼다. 아내와 합의를 하지 못하여 아직 결정할 수 없다는 말에 막판 스퍼트를 올렸다. 가격 흥정에 열을 내는 모습에 거부감이 들었다. 반대 칸에는 눈이 빨갛게 부운 새끼 고양이가 철장을 향하여 계속 돌진하는 공격적인 모습을 보였다. 다들 지치고 힘이 없었다. 더는 있을 수 없어서 딸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왔다. 머릿속이 혼란스럽고, 그곳에 있는 반려견이 불쌍했다.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혼이 났다. 그곳에 있는 반려견들은 대부분 강아지 공장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어미는 계속해서 새끼를 낳고, 더는 임신이 안되면 미용 학원에 보내져 털이 뽑히는 고통에 시달리다 죽음을 맞이한다고 했다. 절대 그런 곳에서 분양받아서는 안된다고 했다. 그 소리에 딸은 한없이 슬퍼 보였다. 생각 없는 아빠 때문에 상처를 받은 것은 아닌지. 아내는 유기동물 분양하는 곳을 알려주었다. 나중에 딸과 함께 가보기로 했다. 그렇지만 아내는 여전히 반려견을 키울 생각이 없어 보였다.


주말에 딸과 함께 인스타그램 릴스로 귀여운 반려견 영상을 계속 보았다. 딸과 나는 눈을 떼지 못했다. 점심때 밥을 먹는데, 아내가 간밤에 꾼 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집에 강아지가 왔어. 목말라 보여 우유를 며칠 주었는데, 문득 물을 주지 않은 것이 생각난 거야. 부리나케 주었더니 얼마나 홀짝 거리며 잘 먹던지. 너무 미안한 거야. 강아지 줄 사료를 사러 마트로 가던 중 이상한 사람을 만나 곤욕을 치르고, 간신히 집에 왔어. 그제야 안도가 되어 크게 한 숨을 쉬고 났더니 잠이 깬 거야."


무언가 의미심장한 꿈이었다. 아내 마음도 서서히 움직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어느새 딸의 눈도 희망으로 가득 찼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내 마음에도 봄이 찾아왔다. 슬프게 떠나 보낸 똘이를 대신하여 또다른 반려견이 삶속에 찾아오려나. 설레고 두려운 마음은 무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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