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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May 08. 2021

암과 살아도 다르지 않네요 정말

이연 작가님의 '암과 살아도 다르지 않습니다'를 읽고.

언젠가 아내가 장모님이 암에 걸렸을 때를 이야기해준 적이 있다. 그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아내는 늘 강한 모습이었던 장인어른이 어느 날 방에서 통곡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고 했다. 그 말을 전하며 눈가에는 촉촉한 눈물이 맺혔다. 다행히 장모님은 잘 이겨내시고, 30년이 다 된 지금도 왕성하게 사회생활을 하고 계신다. 시간이 많이 흘렀음에도 아내에게서 문득문득 그때의 기억이 보인다.


브런치에서 삶의 촉수란 필명으로 글을 쓰는 이연 작가님의 '암과 살아도 다르지 않습니다'가 출간되었다. 진즉부터 읽어야지 하면서도 그렇지 못했다. 솔직히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암에 대한 이야기라서 무겁게 다가오지 않을까. 혹여나 그 감정에 빠져들면 어쩌지. 책을 주문하고 마음이 쿵쾅거렸다.


금요일에 회사를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니 책이 와 있었다. 저녁을 먹은 후부터 읽기 시작했다. 작가님이 암을 선고받고, 암 환우로서의 삶이 세세하게 표현되어 마치 내가 옆에 있는 듯 한 착각마저 들었다. 그런데 그 순간순간이 솔직하면서도 어둡지만은 않게 그려졌다. 심지어 어느 장면에서는 위트 넘치는 묘사로 인해 피식 웃음도 나왔다.



암 통보는 드라마틱하지 않았다. 동네 마트에 물건 고를 때 보다 고민의 시간이 짧았다. 의사는 마치 맛있는 사과 한 알 권유하듯 수술과 항암치료를 권하고 내 장바구니에 담았다.



글을 손에 놓을 수 없었다. 깊게 몰입되었다. 벌써 자정이 다되었다. 옆에서 아내의 한기가 느껴져, 책을 들고 거실로 나왔다. 암 환우가 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고통스러운 순간임에도 우리의 삶은 지속되어야 하고 그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가야 했다. 식사 고민을 해야 했고, 아이들을 챙겨야 했고, 글도 써야 했다. 숲을 좋아해서 그 안에서 느낌 감정을 표현한 문장이 가슴에 남아 필사 노트에 적었다.



이젠 제법 많은 나무를 알아본다. 통증 없는 날, 나는 숲에서 암 환우가 아닌, 그저 하나의 존재였다. 한 송이 꽃이었고, 한 그루 나무였다. 그대로 자연의 일부가 되었다.



분명 전과 다르지만, 암과 살아가는 그저 삶의 하나의 일 뿐이었다. 나도 모르게 문장을 여러 번 되뇌었다. 그래. 그런 거지. 오히려 그 힘든 순간을 애써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에 마음이 울컥했다. 글에 모두 담을 수 없는 시간들이었으리라.


'관계'란 챕터는 암 한우가 되어 주변 사람과 치료받는 병원에서 만나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무심코 하는 말, 상투적인 위로가 당사자에겐 얼마나 뾰족한 화살촉이 되어 가슴속에 깊은 상처를 주는지. 그간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지 않았지만, 2년이란 시간 동안 정성껏 건강을 묻고, 챙겼던 임상 연구간호사와 일화. 학창 시절 은사였던 선생님을 다시 만나 그분이 쇼핑백 가득 넣어준 손수건, 손글씨 엽서, 용돈을 받고 베개가 젖도록 울었다는 이야기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우리는 모두 안다. 진심으로 전하는 마음은 반드시 닿아 따듯한 위로로 스며든다는 것을



징글징글한 세월 탓할 것 없다. '오늘'을 살자구. 따듯하게 입고 다니라구.(2020. 늙은 친구)   



마지막 장을 덮으니 새벽 2시가 다 되었다. 서늘한 바람은 계속해서 창을 두드렸다. 살포시 문을 열고 웅크리고 자고 있는 아내 옆에 누웠다. 책을 읽은 잔상이 계속 남았는지, 괜스레 아내 손을 잡고 꼭 잡아 보았다. 언젠가 아직 마음에 남은 상처를 진심으로 보듬어 주고 싶다.


나에게 좋은 책은 끝까지 손에 놓지 못하는 것이다. 이연 작가님의 '암과 살아도 다르지 않다'가 그랬다. 책 곳곳에서 글에 대한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내 안의 암세포와 공전하며 글 쓰며 살고 싶다. 그게 죽음 앞에서 만난 나의 본질이고, 정체성이다.'란 글의 마침표처럼 작가님께서 오래도록 좋은 글을 많이 써주길 진심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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