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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람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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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May 12. 2021

꼭 그래야만 했니?

감정의 객관화는 어려워.

현관문을 열자마자 "휴"하는 한숨이 절로 났다. 이 감정을 털어내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아내가 있는 식탁에 마주했다. 그리곤 주저리주저리.

출근하자마자 급한 연락이 왔다. 오후에 있을 중요한 회의 자료를 오전까지 제출하라는 것이다. 언뜻 보아도 일선 기관의 자료를 취합해서 재가공해야 했다. 불평할 틈도 없이 급히 업무연락을 취했다. 하나둘 자료는 왔지만 뒤죽박죽 숫자가 맞지 않았다. 일일이 전화해서 수정하고 정리하는데 진이 빠졌다. 점심 먹을 시간도 없었다. 그때였다. 메모가 연달아 두 건이 왔는데, 같은 내용이었다. 요지는 실수했으니 해결해 달라였다. 그리 몇 번이나 신중히 할 것을 강조했는데..... 부아가 치밀었다. 그래. 바쁜 상황만 아니면 대충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이제 막 들어온 신규들이잖아. 하지만 나도 숨이 넘어갈 참이었다.

잠시 일을 미루고 처리할 수 있는 부서 담당자에게 연락했다. 최대한 비굴모드로 도움을 청했다. 이어지는 5분여간의 투덜. 1분 1초의 촌각을 다투는 상황이지만 어쩌랴. 결국 해결한 후 담당자들에게 연락했다. 허걱. 한쪽은 '헤헤' 웃음으로 때우고, 다른 쪽은 '뻔뻔'으로 맞섰다. 이미 인내의 한계점은 넘었다. '헤헤'에게는 정색하며 웃음을 먹었고, '뻔뻔'에게는 조목조목 따져 기어코 미안하다는 사과를 받았다.

미뤄둔 일을 붙잡고 겨우 마무리했다. 자료를 보내고 정신을 차려보니 그제야 아까 일이 목에 걸려 넘어가지 않음을 인지했다. 왜 이리 불편하지. 너도 하는 실수잖아. 분명 바쁜 상황이 감정에 개입했다. 차오르는 번민을 알려주는 것이 당연하다며 합리화했다.

그래도 다독여주는 아내의 말에 위안을 얻었다. 감정의 객관화가 어렵다. 늘 상황이 개입한다. 아직 내가 설익었다는 증거다.

오늘 출근해서 메신저를 보내볼까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엎질러진 물을 도로 담을 수도 없다. 다시 그런 상황을 마주하면 최대한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수밖에.

불편해. 불편해. 마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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