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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Jul 22. 2021

숨 고르기 중

언젠가 다시 써지겠지.

무슨 글을 써야 할지 막막할 때가 많다. 노트북 앞에 앉아, 백색의 공간을 응시한다. 머릿속에 갖가지 생각을 떠올려보지만, 칠흑같이 어두운 터널 속에서 헤매다 이내 포기하고 많다. 그래도 오늘의 글을 써야 하기에 꾸역꾸역 의무감으로 한 단어, 한 문장을 내딛는다. 겨우 다섯 문장이나 썼을까, 육지에 도착한 배처럼 애 눌러 마무리를 한다. 발행 버튼을 누르고는 글 앞에 놓인 시간만큼 나를 짓누르던 중압감에서 그제야 벗어난다. 휴. 어찌어찌 썼네.


글은 살아있는 생물 같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어떤 날은 주체 못 할 생동감에 미쳐 손가락이 따라가지 못할 만큼 써지다가도 또 어떤 날은 병든 닭 마냥 자판 하나 누르기 힘들다. 전자는 찰나요 후자는 일상이다. 변덕도 심하여 대화체의 글에 빠져 한동안 모든 문장을 대화로 채우더니 금세 시들해져 묘사로 넘어갔다가 이도 저도 귀찮다며 민숭민숭한 글로 귀결된다. 하루의 몸 상태나 기분에 따라서도 글의 톤이 달라진다. 가끔 우울함을 감추기 위해 밝은 척을 해보지만 써놓은 글을 읽어보면 들통난다. 귀신은 속여도 글은 못 속이지.


그럼에도 나는 꽤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글은 포근한 이불처럼 마음을 덮어주기 때문이다. 전에는 힘들 때 혼자 삭히곤 했다. 어느덧 마흔 중반, 어딘가에 털어놓는 것이 불편한 나이가 되어버렸네. 아니 그런 대상조차 없다는 말이 맞겠다. 지금은 엄마에게 쪼르륵 달려가 고자질하는 아이처럼 슬픈 일이 만나면 어김없이 글에 담아낸다. 그러면 그 감정은 어느새 사그라들어 작은 먼지 되어 사라진다.


그래. 지금은 잠시 숨 고르기 중인 거야. 글이 나아가는 시간보다 멈춰있는 순간이 더 많지만 언제 또 번뜩이는 글감이 찾아와 쓰지 않으면 못 견딜 때가 분명 올 거야.


그때를 상상하며 다시 또 빈 화면 속을 멍하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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