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사람 냄새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실배 Jul 29. 2021

퇴사하는 그녀가 수줍게 건넨 조그마한 선물 꾸러미.

아쉽고, 고맙고, 미안한 마음

오후 일과가 시작되었다. 제출 기한이 얼마 남지 않는 자료를 두고 씨름 중이었다. 그때 다른 부서 직원 한 명이 내 앞으로 왔다. 순간 나도 모르게 자리에 일어났다.


"계장님. 이거 받으세요."


수줍게 내민 것은 과자, 사탕, 문구류가 예쁘게 담긴 선물 꾸러미였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어떤 말을 할지 어리둥절할 때,


"저, 오늘 부로 퇴사해요."


순간, 3초 정도 멈칫한 후에야 말을 건넸다.


".... 그러시구나.... 미리 말씀했으면 식사라도 했을 텐데. 에고. 그간 정말 고생 많았어요. 자료 요구가 많았죠. 내가 미안하네."


손을 저으며 아니라고 하는데, 살짝 어색한 웃음이 오갔다. 앞으로 잘 되길 바란다는 통상적인 인사를 건네며 헤어졌다. 무언가 정리되지 않은 책장처럼, 복잡한 심경이 들었다.


그 직원은 1년 반 전쯤 계약직으로 입사했다. 사무실을 돌며 인사를 했는데, 솔직히 조금 놀랐었다. 회사 내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분홍 가득한 화사한 옷차림이었다. 머리색도 금발에 가까웠다. 그 뒤로도 컬러풀 한 패션은 유지되었다. 늘 칙칙한 검정, 남색에 익숙한 나에겐 신선했다. 마치 흑백 TV가 가득한 세상 속에 홀로 칼라 TV 같은 존재랄까.


업무적으로 크게 관계할 일이 없었는데, 올 초부터 접점이 생겼다. 그 직원의 업무가 바뀌면서 나와 함께할 일이 생겼다. 주로 내가 자료를 요구하면, 작성해서 주었다. 일 특성상 매우 촉박했다. 나도 각과에서 자료를 취합하고 정리해서 제출해야 했기에 마감에 시달렸다. 나도 모르게 닦달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그 직원은 싫은 내색 없이 늘 기한을 맞혀주었고, 자료 안에서도 세심하게 신경 썼음을 알 수 있었다.


막상 이렇게 떠난다고 하니 미안했다. 고마운 마음에 밥이라도 대접하면 좋았을 텐데. 사실 젊은 직원과 둘이 식사하는 것도 부담되었고, 코로나로 선뜻 시간 내기도 그랬다. 물론 모두 핑계였다. 그만큼 마음을 나눌 여유도 없이 빡빡하게 살아온 반증이었다.


퇴사 이유를 물었을 때, 살짝 흔들리는 눈동자를 보았다. 바보 같은 물음이었다. 말 못 할 사연이 있었으리라.


선물 꾸러미를 풀지도 못하고 책상 위에 놓아두었다. 바라보는데, 아쉽고,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차례로 스쳐갔다.


부디 원하는 곳에 취업해서, 그 좋은 역량을 마음껏 발휘하길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숨 고르기 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