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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Jan 04. 2022

퇴사하고 소를 키우겠다는 동료가 남 일 같지 않았다.

정답 없는 문제와 씨름하는 중

어제저녁, 야근을 위해 식사를 마친 후  다시 사무실에 돌아와 앉아 좁은 모니터 속에 나열된 숫자와 씨름을 하고 있었다. 그때 핸드폰 진동이 울렸고, 낯익은 번호가 보였다. 회사 입사 동기였다.


"잠시 사무실에 나와 통화할 수 있어요?"


 말속에 말린 명태처럼 푸석함이 느껴졌다. 핸드폰을 귀에 대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곤 오래간만에 동기와 통화를 했다. 그 친구는 나와 같이 수도권에서 계속 근무하다가 올여름에 처음 지방 발령을 받았다. 떠나기 전 만난 자리에서 북적대고, 시끄러운 곳에 벗어나 이제 조금 숨을 쉴 것 같다며 미소 짓던 모습이 아직 생생했다.


예상대로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고 있었다. 다만 가족과의 심리적 거리로 인한 멀어짐을 두려워했다. 이제 막 사춘기에 진입한 아이와 그로 인해 지친 아내의 모습은 주말에 집에 가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왠지 나만 몸과 마음이 편한 것 같은 미안함이 들었다. 전에 나도 가고 싶다는 말을 기억했는지, 신중하게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곤 자연스레 회사에 대한 이야기로 흘렀다. 그 친구는 처음 보았을 때부터 밤하늘에 별처럼 빛났다. 나보다는 네 살 어린 동생이지만 워낙 성숙해서 친구처럼 말이 잘 통했다. 내 눈이 틀리지 않았다. 연수원 교육을 마치고 회사에 정식으로 발령 나자마자 업무적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몇 년 되지도 않아서 본사에 발령이 났고, 그 뒤론 두세 걸음 앞서갔다. 승진도 동기 중에서 가장 빨랐다. 그것도 두고두고 회자될 정도로 파격적으로. 만나면 늘 자신감 가득하고, 열정이 넘쳤다.


"저.... 회사 그만두고 싶어요...."


그의 입에서 툭하고 나온 말은 둘 사이에 적막의 벽을 쳤다. 순간 놀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곤 요즘 회사를 왜 다니는지에 관한 근본적인 물음이 머릿속에 떠나지 않는다고 했다. 속이 텅 빈 껍데기처럼 죽은 눈동자를 뜬 체 그저 회사를 오가는 자신을 견딜 수 없다고 했다.


친한 사촌이 최근에 사업을 접고, 고향에서 소를 키우기 시작했다며 따라가고 싶다는 말이 그저 그런 빈말로 들리지 않았다. 반사적으로 쓸데없는 생각 말고 버티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아직 40대 초반의 창창한 나이, 더구나 외벌이면서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은 무책임하게 다가왔다. 다독이는 말을 반복하며 조만간 얼굴 보고 이야기하자는 약속을 잡고 연락을 끊었다.


전화 통화의 여운은 길게 남았다. 화장실에서 손을 씻은 후 둥근 거울을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회사를 왜 다닐까?' 솔직히 나 또한 생계 수단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한때는 회사에서 이루고 싶은 꿈이 많았다. 일이 고돼도 보람이 있었고, 성과가 주는 쾌감을 즐겼다. 그런데 어느 순간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은 생각이 스멀스멀 찾아왔다. 내가 떠나도 그 자리는 누군가가 채우는 부속품에 지나지 않을까.

 

그 무렵 글을 만나 삶의 의미를 발견하곤 더욱 짙어졌다. 그래서 이런 내가 본사에 있다는 것이 죄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어찌 보면 회사를 갉아먹는 요인 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그저 '승진'이라는 보이지 않는 허상을 붙잡고 하루를 버티고 있다.


지금쯤 그런 고민은 자연스러운 것인가. 하긴 그런 물음에 답을 얻었는지 떠나는 이도 적잖았다. 그마저도 아무런 준비가 없는 사람에겐 그저 실행할 수 없는 부러움일 따름이었다.


동기와의 전화 통화를 인하여 내내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직접 만나 진지하게 들어보아야겠다. 물론 정답이 없는 문제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마음의 안위 정도는 나눌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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