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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May 01. 2022

수원엔 무언가 특별함이 있다

그 어느 날보다 충만했던 하루

며칠 전 선배에게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장소는 수원 화성 행궁이었다.


선배는 직장에서 만났지만 글을 쓰고 책도 여러 권 낸 작가였다. 매번 뻔한 직장 이야기에서 벗어나 마음껏 글에 관해서 나눌 수 있는 좋은 벗이었다. 살이 넘는 나이 차이도 우리에게는 아무런 제약이 되지 않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준비를 했다. 날이 선선하다고 해서 맨투맨티에 청자켓 그리고 운동복 바지를 입었다. 모자도 필수였다. 밖은 선선한 바람이 불며 초가을 날씨 같았다. 한 시간여쯤 지하철을 타고 도착하니 저 멀리서 선배가 손을 흔들었다.


버스를 타고 갈 수도 있었지만 굳이 걸어갔다. 우리에겐 밀린 이야기가 한가득 하였다. 선배는 바쁜 일정으로 창작 활동을 거의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최근에  듣기 시작한 소설 쓰기 수업 이야기를 풀어냈다. 더불어 쓰고 있는 소설 관해서도 조언을 얻었다. 어느새 눈앞에서 거대한 성이 위용을 드러냈다. 천천히 성곽길을 걷기 시작했다.

어디를 걷든지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분위기에 취하고 이야기에 빠져 들었다. 걷다가 힘들면 아무 벤치에 앉아 바람에 땀을 식혔다. 때로는 신발 벗고 툇마루에 누워 파란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럴 땐 아무 말도 필요치 않았다.


많이 걸어서일까. 급 배가 고팠다. 중문 시장 순대 골목에 갔다. 정돈된 식당보다는 구수한 시장 골목이 당겼다. 시끌벅적, 왁자지껄한 분위기에서 국밥에 막걸리를 마셨다.

돌아오는 길, 우리는 또다시 버스를 타지 않고 걸었다. 중간에 한옥집도 구경하고 쉬다 걷다를 반복했다. 그러던 중 사람이 모이기 시작한 곳에 궁금해서 가보았다. 바로 오후 2시에 맞추어 장용영 교대 의식이 펼쳐졌다.

복장을 갖춰 입은 군인들이 근엄한 표정으로 식을 거행했다. 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했다.


교대 의식을 끝까지 다 보고 드디어 수원역에 도착했다. 많이 걸어서인지 발바닥에 불이 났다. 우리의 이야기의 끝은 선배의 수원에 관한 소설 쓰기와 나의 창작 마무리였다. 각자 목표를 다지며 아쉬운 작별을 했다.


신기하게도 우리가 만날 땐 늘 날이 좋았다. 오늘도 더할 나위 없이 화창한 하루였다.


내일이 두렵지 않을 만큼 충만함 그런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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