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사람 냄새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실배 Jun 26. 2022

주말에 글 쓴다고 뛰쳐나간 몹시 간 큰 남편

그럼에도 글을 써야 하는 이유

지난주 내내 출장으로 밀린 일이 한가득했다. 오전 일찍 회사에 출근하고 마무리한 후 돌아왔다. 잠시 쉴 틈도 없이 집안 구석구석 청소를 했다. 청소기를 돌리고, 물걸레로 닦고 먼지 제거까지 마치면 한 시간 반이 훌쩍 지나갔다. 마무리로 빨래까지 개고 나면 끝이었다.


그제야 서둘러 가방 안에 짐을 챙겼다. 아내에게 죄스런 얼굴로 양해를 구하고 근처 카페로 향했다. 주말 이틀 연속 혼자 밖에 나간다는 것은 대단히 큰 용기가 필요했다. 더구나 글을 쓴다고. 나는 간이 몹시 큰 남편이었다.


구석자리에 짐을 놓고 시원한 카페라테 한잔을 주문했다.  가방 안에서 갤럭시 탭을 꺼내 나만의 각도로 위치했다. 정확한 표현은 모르겠고 '비스듬히' 정도. 정면은 부끄러워 이 정도가 좋았다.

왼쪽 어깨를 한 번, 오른쪽 어깨를 한 번 돌리고 두 손을 가지런히 키보드 위에 올렸다. 마법이라도 부려 글이 술술 써지면 좋으련만 그저 능력 없는 평범한 글쟁이라 '뱅뱅' 머릿속에 떠도는 생각을 잡아 겨우 한자 써 내려갔다. 텅 빈 하얀 공간은 내내 외롭다 까만 글이 찾아와 조금씩 채워갔다. 한 단어, 한 문장, 한 단락 생각의 속도만큼 시원하게 나가진 못하더라도 다행히 멈춤은 없었다.


글은 오묘했다. 처음엔 막막하다, 길이 나타나 열심히 가다 보면 어느 순간 막다른 골목이 가로막는다. 이제 더는 못 가겠지 하며 좌절할 때쯤 사다리든 망치든 넘어갈 무언가가 주어지고 몇 번을 반복하다 끝내 종착지에 도착했다. 그 길이 수월하면 좋으련만 쉽게 가게 두지 않았다.


목이 뻐근해 잠시 눈앞에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비가 온다더니. 내내 흐리기만 하고 거짓말쟁이. 커다란 상가 앞으로 초록 잎이 가득한 나무가 바람에 파르르 떨렸다. 하필 그 앞에서 몇 시간째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으니 얼마나 못마땅했을까. 미안해 나무야. 지금 내가 좀 그래.

드디어 마침표를 찍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오타가 없는지 맞춤법 검사기를 돌려 확인한 후 처음부터 끝까지 작게 읊조렸다. 이렇게 소리 내어 읽으면 쓸 땐 몰랐던 어색한 문장이 꼭 튀어나왔다. 어디 숨었다 이제야 나타난 거니. 이제 다 되었다. 출판사에 메일 전송 버튼을 누르고 그제야 어깨를 짓눌렀던 무게를 벗었다.


이번에 출간할 책의 원고 마감을 7월 초까지 정했다. 앞으로 서너 편의 글을 더 써야 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당분간은 글감옥 안에서 허우적댈 것이다. 다행히 회사에서 밥을 먹으러 나갔다 오는 길에 불쑥 다음 원고에 관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아무리 고민해도 생각나지 않더구먼 생뚱맞게 길 한가운데서 찾았다. 하긴 늘 이런 식이다. 아예 생각을 말아야 하나.


이번에 마무리를 잘하면 아니 나만 잘하면 올해 안에 새 책이 나올 것 같다. 출판사 대표님과도 희망적인 이야기를 나누었다. 벌써 세 번째 출간이라니. 글이 좋아 그저 쓰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아무리 괴롭다 힘들다 해도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기에 감히 손을 떼지 못한다.


이제 마무리하고 얼른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곧 시험을 앞둔 첫째를 감시하는 중책을 맡았다. 남은 내 시간은 거실에서 공부하기 싫어 몸을 배배 꼬는 아이와 사투를 벌이겠지. 벌써부터 골이 지끈거리네.

매거진의 이전글 매우 불만... 출근길 전쟁이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