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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Dec 08. 2022

죽음이 물었다.

내 삶을 돌아보고, 올바른 방향을 설정해준 소중한 책

어느덧 마흔 중반을 넘었다. 죽음을 떠올리면 아직도 머나먼 이야기 같지만 실상 그리 멀지도 않았다. 작년 여름에 옆 부서 동료가 퇴근 후 집에서 자다가 급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불과 하루 전에도 복도에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었는데. 모두가 그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았다. 심지어 나와 나이도 같았다.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아마도 스트레스 때문이었으리라. 새로 맡은 일로 많이 힘들어했다는 이야기를 건너 들었었다.


그 뒤로 한동안 '죽음'이라는 단어가 따라다녔다. 길을 가다가도, 누군가를 만나더라도, 침대에 홀로 누워서도 불쑥 나타나 소리 없이 사라졌다. 처음엔 죽음 자체에 두려움을 느꼈고, 그다음엔 삶의 허무함으로 괴로웠다면 종국엔 어떻게 살아야 할지로 귀결되었다. 죽음을 피할 수 없다면 적어도 맞닥뜨리기 전 더 많이 웃고, 즐겁고, 행복하고 싶었다. 이제 곧 오십이 눈앞이거늘 살짝 스치는 바람에도 갈대처럼 흔들리고, 소소한 일에도 낙담하고 괴로워하는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그러던 중  아나 클라우디아 작가의 '죽음이 물었다'를 읽었다. 죽음이 무얼 물었다는 거지. 제목부터가 강렬했다. 어쩌면 그 속에서 나의 고민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이 들었다.


작가는 의사였다. 우리가 생각하는 보통의 의사가 아닌 완화의료 전문의였다. 완화의료란 단어 자체가 생소했지만 어디서 본 듯했다. 곰곰히 생각하니 떠올랐다. 월드컵 8강전 브라질과 한국 전을 앞두고 '축구 황제'펠레가 암에 걸렸는데, 화학치료는 중단하고 완화치료를 받고 있다는 기사를 읽었다.


책에서 완화의료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했다.


완화의료는 삶의 끝자락에 나타나는 다양한 증상, 특히 통증을 완화시켜 인간이 존엄성을 가지고 세상을 떠날 수 있도록 하는 돌봄의 의학이다. 완화 의료자를 흔히 안락사 시켜주는 의사로 오해하는 사람도 있지만, 완화의료는 오히려 안락사를 막아준다. 통증이 없어지고 증상이 좋아지면, 환자는 죽음을 찾아가는 일에 집착하지 않는다.

서두에 작가도 밝혔듯이, 본인도 누군가에게 자기소개를 할 때 심각한 고민에 빠진다고 했다. 그래서 죽어가는 사람을 돌보고 있다고 말한다는데 그 자체가 주변 사람을 곤경에 빠트렸다. 누구나 꺼내고 싶지 않은 두 단어 죽음, 그와 가장 맞닿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나조차도 알 수 없었다.


본격적으로 책의 내용 안으로 다가가면서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가 죽음을 앞둔 사람들을 만난 일화나 혹은 의학 자체에 관한 설명으로 채워질 거란 선입견을 가졌다. 하지만 목차만으로도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누구인가', '인간으로 존재하기', '책임감 있는 두려움', '어떤 길이든 같은 곳으로 이어진다', '행복을 위한 조언', '존엄한 끝맺음을 위한 선택' 등 의학서적과는 거리가 먼 그 자체로 삶의 명제들이 가득했다.   


작가가 의과대학 시절 죽음을 앞둔 사람의 고통이 고스란히 전이되어 중간에 그만둔 적이 있다는 일화가 인상적이었다. 다시 돌아간 후 소외된 동네에 있는 산부인과에서 자원봉사를 하면서 산모들이 고통을 지나 아기를 만나는 기쁨이 시련의 시간을 의미 있게 만들어준다는 것을 깨닫고 의사라는 직업에 확신을 가졌다고 한다. 탄생과 죽음은 하나로 묶여있고, 누구나 선택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영역이지만 그 사이의 연결고리를 만들어주는 이가 바로 의사이기 때문은 아닐는지.


책을 읽으며 죽음이 화두지만 오히려 살아있는 삶에 관한 이야기로 다가왔다.


사람들이 죽음에 가까워져 자신의 유한성에 대한 고통을 느끼면서 진실을 감지하는 진정한 안테나를 갖게 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삶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들이 무엇인지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명쾌하게 한다..... 이런 까닭에 누구도 불치병과의 싸움에서 실패하지 않는다.

죽음에 대한 존중은 신체적 불멸성을 가져다주지는 못하지만 가치 있는 삶의 의식적 체험을 가능하게 해준다. 고통은 완화되고, 슬픔은 행복에 상쇄된다.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 곁에 있어주는 건 우리 삶에서 순식간에 스쳐 지나가는 충만함의 순간이 될 수 있다.


이야기에 빠져들면서 점점 나의 삶을 반추하게 되었다. 작가가 죽어가는 사람 곁에 있는 가치를 지닌 사람이 되기 위해서 자신의 삶을 먼저 돌아보는 작업을 끊임없이 하기 때문은 아닐까.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작가의 모습을 보며 죽음 가까이에서 얻은 소중한 교훈이란 생각이 들었다.


현재의 삶을 잘 살았어야만 좋은 죽음에 이를 수 있다는 진리를 작가가 소개한 브로니 웨어의 죽어가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다섯 가지 후회를 통해 깨달았다.


그중에서 다른 사람들이 내게 기대하는 삶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충실한 삶을 살지 못했다는 후회가 마음을 울렸다. 지금 내가 그랬다. 직장에서는 남들보다 빨리 승진하고 싶은 욕망으로 삶을 갈아 넣었다. 그 이면을 돌아보면 주변 시선이 있었다. 남들에게 인정받고, 남들 앞에서 우쭐대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했다. 그게 뭐라고. 시간 총량의 법칙상 회사에서 쏟아낸 시간만큼 가정엔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그 시간에 좋은 아빠, 좋은 남편, 좋은 아들이 되기 위해 노력했으면 지금 내 삶은 훨씬 충만하고 행복했으리라.


책을 읽으며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이정표를 얻었다. 그래서 더욱 의미가 있었다. 죽음 앞에 서서 내가 살아온 삶을 돌아볼 때 후회보다는 그래도 잘 살았다는 말을 남길 수 있도록 소중하고 중요한 가치를 잊지 말아야겠다.


2022년도 이제 한 달이 채 남지 않았다. 올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이 책을 만나 나를 돌아보게 된 점은 큰 선물과도 같았다. 비단 죽음의 이슈뿐 아니라 삶의 올바른 방향을 찾고 싶은 사람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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