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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Dec 24. 2022

글항아리가 가득 차면 글이 된다.

쓰고 싶은 글이 나올 그때까지.

"내 안에는 글항아리가 여러 개 있어요. 그중 어느 하나가 차면 글로 나온답니다."


마치 건반을 치듯 작가의 말은 화음을 만들며 적막한 공간에 흩트렸다. 여운이 깊게 남았다. 말이 이렇게나 고귀할 수 있을까. 하나의 질문이 나오면 바로 답을 하지 않고 저 멀리까지 돌고 돌아 어느새 종착지에 다다랐다. 참으로 신비롭다.


얼마 전 지인의 초대로 어느 작가의 북토크를 다녀왔다. 소설가로 유명한 분인데 이번에 에세이집을 냈다. 용인에서도 깊숙이 들어가는 곳에 위치한 독립서점이었다. 차를 타고 좁고 구불한 길을 한참을 가서야 도착했다. 예정 시간보다 조금 늦었는데 문을 열고 들어가니 공간 안에 사람이 가득했다.

운 좋게 맨 앞자리에 앉았다. 글에 관한 여러 이야기 중 글항아리가 내내 마음에 남았다. 분명 가만있는다고 채워지지 않을 텐데. 어떤 삶을 살았기에 한 개도 아닌 여러 개가 더구나 계속 채울 수 있을까. 그 감정은 질투를 넘어 찬양에 가까웠다. 지금 이 순간도 항아리 속 이야기는 언젠가 빛을 볼 그때를 기다리며 열심히 숙성되고 있으리라.


문득 나에게도 글항아리가 있을지 궁금해졌다. 글이란 걸 처음 써보고 싶다는 충동에 블로그에 끄적인 시간이 벌써 5년이 다 되었다. 그때도 지금도 매일의 일상은 담아내고 있다. 정성스레 한 땀 한 땀 썼던 글은 어느새 의무감으로 채워간다. 기록에 그치는 글에도 의미가 있을까. 가끔 회의감이 턱밑까지 들어찬다.


사실 쓰고 싶은 글이 있다. 내내 생각해만 머물고 손이 가지 않는다. 북토크에서 누군가 물었다.


"글항아리가 다 찬 걸 어떻게 알죠?"

"글쎄요.... 뭐라 표현하면 좋을지. 때가 되면 쓰고 싶어 견딜 수 없어져요."

 

확신에 찬 얼굴은 주변을 환히 비쳤다. 순간 적막이 흐르고 모두의 시선이 작가로 향했다. 답 사이에 자그마한 틈조차 품격을 더했다.


언제가 내 안의 글항아리도 가득 차 흘러나올 날이 오길 바란다. 그때를 위해서라도 지금부터 차곡차곡 채워나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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