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퇴근을 앞둘 무렵 카톡이 울렸다. 핸드폰을 열고 확인해보니 장모님이셨다. 무슨 일이 있나 잠시 일을 멈추고 읽어보았다. 그 안에는 뜻밖에도 내가 쓴 기사에 관한 내용이 담겨있었다.
▲ 월요일 퇴근을 앞둘 무렵 카톡이 울렸다. 핸드폰을 열고 확인해보니 장모님이셨다. ⓒ 최은경
▲ 우연히 내가 쓴 오마이뉴스 기사를 읽고 장모님이 응원 메시지를 보내왔다. ⓒ 신재호
우연히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기사를 읽었는데, 기자 이름이 나와 같아 반가운 마음에 글을 남겼다고 했다. 앞으로 좋은 글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으면 좋겠다는 마지막 문장에 가슴 속에 무언가가 차올랐다. 서둘러 감사하다는 답을 보냈다.
글을 쓰면서 가끔 이런 일을 겪는다. 며칠 전에는 회사 후배가 다가와 글을 쓰는 플랫폼 브런치 애독자라며 한쪽 눈을 찡긋하며 지나갔다. 생각지도 못한 독자를 만나 어쩔 줄 몰랐다. 그래도 한 명이 소중한 독자이니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마흔을 넘어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처음엔 최대한 주변에 알리지 않았다. 혹여나 색안경을 쓰고 바라보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일은 소홀히 하면서 딴짓한다는 뭐 그런 것. 하지만 걱정은 기우였다.
혹여나 소식을 알게 된 주변 사람 모두 긍정적인 마음으로 글쓰기를 지지해주었다. 심지어 몇몇은 어떻게 하면 글을 쓸 수 있는지 물어보기도 하고, 쓴 글을 읽어봐 달라며 슬쩍 카톡으로 보내 오기도 했다. 그럴 땐 반가운 마음으로 성심껏 방법도 알려주고, 정성스레 글에 관한 피드백을 해주었다.
최근에 회사 입사 동기와 함께 외부 교육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마침 같은 방으로 배정받아 둘이서 5일 내내 붙어 있어야 했다. 첫날 교육을 마치고 방에 들어와서 동기와 잠시 이야기를 나눈 후 노트북을 켜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하루의 일과를 글로 마무리하는 일은 오래된 습관 중 하나였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동기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신 과장. 뭐가 그리 좋길래 내내 헤벌쭉이야?"
"아. 글 쓰는 중이야. 매일 글을 써서 정해진 카톡방에 공유해야 해."
"정말? 부지런도 하다. 그렇게 매일 쓸 글이 있어?"
"그럼. 이렇게 둘이 있었던 시간도 좋은 글감인 걸."
동기는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연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리곤 최근에 사들인 주식에 관하여 일장 연설을 시작했다. 침까지 튀기며 열심히 설명하는데 이미 내 머릿속은 온통 글 길을 찾아 헤맸다.
글쓰기의 즐거움을 알게 된 동기
▲ 글쓰기가 가진 힘 삶이 퍽퍽하거나, 힘들다고 느껴진다면 글을 써보았으면 좋겠다. ⓒ Unsplash
글을 마무리하고 노트북을 접으려는 순간, 동기는 본인도 알려달라며 졸랐다. 피곤도 하고 살짝 귀찮기도 했지만 요즘 허하다는 말에 흔들렸다. 블로그에 가입하고 간단히 배경을 설정했다. 그리곤 글 쓰는 위치와 방법을 알려주었다.
"신 과장, 그럼 이제 무얼 해야 해."
"그냥 일상을 쓰면 돼. 참, 족구 좋아하잖아. 그거 한번 써봐."
"그게 글이 되려나…."
"그럼. 원래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거야."
옆에서 내내 부스럭댔다. 슬쩍 쳐다보니 입꼬리가 잔뜩 올라가서는 부지런히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었다. 좀 전만 해도 뭐가 그리 재밌냐며 고개를 저은 사람은 어디 있는지. 한참을 씨름하더니 내 옆으로 다가와 핸드폰을 내밀었다. 블로그 닉네임도 족구에 관한 것이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 회사 동기의 인생 첫 글 나의 권유로 회사 동기가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 신재호
족구를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부터, 그 취미 생활이 삶에 얼마나 큰 활력이 되어주는지를 세세하게 적었다. 평소 족구를 좋아하는지는 알고 있었지만, 족구 지도사 자격증까지 따며 진심인지는 글을 읽고 처음 알았다. 세련된 문장이나 고급스러운 표현 하나 없는 있는 그대로의 담백한 글이었지만 글쓴이의 진심이 가득 담겨 있어 내 마음도 움직였다.
보기 좋게 문단을 나눠주고, 오타 정도를 수정해 주었다. 잘 썼다고 말해주며 앞으로도 꾸준히 기록하면 좋겠다고 힘을 주었다. 동기의 반짝이는 눈빛을 바라보며 나도 처음 글을 만났을 때 그렇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블로그 이웃 신청도 했다. 그때부터 동기는 5일간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썼다. 밤늦도록 피곤하지 않은지 글쓰기에 집중했다. 더는 주식 강의도 없었다. 동기의 글을 매일 읽으며 열심히 댓글을 달았다. 족구는 동기에게 단순히 운동이 아니었다. 중년의 퍽퍽한 삶에 한 줄기 빛과 같았다.
솔직한 글이 가진 거대한 힘
함께 입사한 지 15년이 넘었지만, 근무지가 달라 단편적인 모습만 알았는데 글을 통해 그의 삶을 깊게 이해하게 되었다. 동기 역시도 중년을 지나가며 여러 고민이 있었다. 나와 맞닿은 부분이 많아 공감되었다. 글이란 그런 것 같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길게 말하지 않아도 쓴 사람의 솔직한 마음이 담기면 그대로 전해졌다.
교육을 마치고 헤어지는 날 동기는 고맙다며 내 손을 꽉 쥐었다. 그건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글을 읽으며 한층 더 가까워짐을 느꼈다. 비록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글을 통해서 계속 서로의 삶을 들여다보고 응원을 할 것이다.
삶이 무기력하거나, 깊은 고민으로 흔들거리고, 혹은 새로운 즐거움을 찾고 싶다면 주저 말고 펜을 들었으면 좋겠다. 얼마나 큰 즐거움이 찾아올지 글로 다 표현할 순 없지만, 직접 써본다면 분명 알게 될 것이다. 내가 그랬듯, 이제 막 눈을 뜬 동기가 그렇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