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옮기고... 어느 날 받은 한 통의 메일
처음은 번아웃 탈출이었지만 이제는 글쓰기로 희망을 쏩니다
'마음을 담은 편지'
큰 마음먹고 또다시 이직을 했다. 세 번째 직장이었다. 이직하고 적응에 힘겨워하던 어느 날 전 직장 동료에게서 메일 한통이 왔다. 의아했지만 반가운 마음에 급하게 메일을 열었다. 하지만 메일의 내용은 수신인이 내가 아닌 특정 다수에게 보내는 한 편의 에세이였다. 조금은 실망스러웠지만 오랜만에 소식이라 한줄한줄 읽어나갔다. 글을 읽어나가면서 실망감은 반가움으로 바뀌었다. 따뜻한 글 한편으로 내 하루의 고단함은 충분히 위로가 되는 기분이었다. 처음으로 글 한 편이 줄 수 있는 따뜻함을 깨달을 수 있는 날이었다.
번아웃! 탈출구가 필요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일상에 너무 지쳐 모든 걸 내려놓고 싶은 무기력감이 들 때가 온다. 말 그대로 번아웃 증후군! 몇 년 전 내가 그랬다. 수년간을 잘하고 있다고 느꼈다. 하지만 업무 성과도, 개인적인 성장도 멈춘 것 같았다. 수렁에 빠진 듯이 끝이 없었다. 모든 일이 꼬여갔다. 안되려니 벗어나려 애써도 계속 헤어 나오지 못했다. 모든 일에 의욕이 없었다. 말 그대로 번아웃이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으려는 순간 과거 동료가 보내줬던 뉴스레터가 생각났다. '마음을 담은 편지!' 과거 글이 줄 수 있는 따뜻함과 위로를 다시 느끼고 싶었다. 당장 내게 필요한 건 무엇보다 큰 위로와 그곳을 벗어나기 위한 비상구였다. 한 통의 위로가 되는 편지가 간절했고, 그 편지를 직접 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막상 어디서, 어떻게 써야 할지 몰랐다. 그래도 쓰고 싶었고, 써야만 했다.
당장은 어딘가 내 얘길 쏟아내고 싶었고, 그 얘길 읽은 누군가에게 공감을 받고 싶었다. 어떻게 써야 할까 고민했지만 막상 처음 접한 플랫폼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용기가 생겼다. 어떻게 써야 할까 막연한 마음이었지만 막상 써보니 써지는 게 글이었다. 잘 쓰고, 못 쓰고 가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쓰고 싶었고, 그렇게 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 처음은 미약했다. 글 하나를 쓰는데 여러 날을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발행한 글 숫자도, 조회수도, 공감수도 모두 초라했다. 하지만 꾸준하니 조금씩은 변화가 생겼다. 여러 날을 반복하며 습관처럼 글을 쓰니 글 한편을 써나가는데 드는 시간이 줄기 시작했다. 글을 써 내려가는 시간이 주니 글 쓰고 싶은 욕구가 더 강해졌다. '오늘은 어떤 글을 써야지', '내일은 또 어떤 글을 써볼까'하고 글 쓸 즐거움에 마음은 분주했다.
쏟아지는 글 소재에 메모만 해도 한 가득이었다. 썼던 글을 읽으며 혼자 킥킥대고, 내 글에 스스로가 위로받을 때도 있었다. 평소와는 다른 이유로 퇴근시간이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작게는 몇 줄, 많게는 글 하나를 쓰는 일이 일상이 되어갔다. 글쓰기에 진심이 되면서 발행되는 글 수도 늘었다.
쓰고, 쓴 글을 공유하면서 삶에도 변화가 생겼다.
글 쓰는 재미를 알게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제안이 왔다. 브런치에서 온 메일이었다. 카카오 공식채널을 통해 내가 썼던 글을 레터로 보내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두 번의 레터가 많은 구독자에게 전달됐다. 덕분에 많은 구독자들을 만나게 되었다. 많은 분이 공감을 주었고, 과거에 아팠던 상처는 아물고 새살이 돋았다.
그렇게 전달된 글이 많은 사람에게 위로를 주었다는 생각에 스스로가 뿌듯했다. 이후로도 여러 가지 다양한 제안이 들어왔고, 써 놓은 글을 여러 곳을 통해 나눔을 실천했다. 조금 더 많은 사람이 내 글을 통해 위로받고, 공감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나눔을 멈추지 않았다. 누군가에게는 작지만 선한 영향과 위로를 주지 않았을까 싶다.
이렇게 글을 쓰며 내 삶에도 변화가 생겼다. 그 변화는 당장의 문제부터 해결해 줬다. 번아웃이 왔던 내 직장생활부터 시작됐다. 늘 피해 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던 내게도 여유가 생겼다. 어느덧 욕심을 내지 않고 나와 맞지 않다고 선을 그었던 일을 돌아봤다. 수동적인 태도로 일관했던 일, 이년의 습관을 버렸다.
당장은 고쳐지지 않더라도 생각만은 긍정과 능동을 마음에 담았다. 내게 주어진 일을 다하며 회사와의 관계회복을 시도했다. 새롭게 마음을 먹으니 함께 일할 동료들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그동안 마음에서 밀어내기만 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일에 재미까지는 아니지만 신기하게도 회사 다닐 맛이 새록새록 새살 돋듯 생겨났다.
마냥 무기력했던 주말 휴일에는 이른 기상과 함께 글쓰기 루틴이 생겼다. 다들 깨지 않은 이른 시간에 쓰는 글 맛은 요즘도 잃지 않고 싶은 습관이다. 처음엔 조용하고, 편안한 주말 아침이 좋아서 시작했다. 하지만 이른 아침 노트북 앞에 앉아있는 시간이 좋았다. 또 메모했던 글을 보면서 쓸 거리를 정리하는 하루의 시작이 좋았다.
적막하기까지 한 주말 아침에 '탁탁탁... 톡톡톡...' 음악 같은 타이핑 소리가 좋았다. 남들보다 이른 하루를 시작해서 하루가 길어져서 좋았다. 하얀 여백이 내 생각으로 조금씩 채워지는 게 좋았다. 그렇게 글을 쓰는 내내 모든 게 좋았다.
글을 쓰며 새로운 부캐도, 새로운 관계도 형성됐다.
'작가님', 글을 쓰며 조금 부끄러웠지만 가장 듣기 좋은 말이다. 브런치 작가로 등록되고 나서 글을 어느 정도 썼을 때다. 쓴 글 댓글에 독자 한 분이 글을 잘 읽었다는 공감의 글을 달았다. 댓글 말미에 '작가님, 글 잘 읽고 갑니다'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작가님' 낯설지만 너무도 설레고, 듣기 좋은 말이었다. 전업은 아니지만 내가 쓰는 글을 누군가는 읽어주고, 공감해 준다는 생각이 깊이 들었다. 어깨 의쓱까지는 아니지만 지금도 동기부여가 된다. 이후 난 지금까지도 쭉 글을 쓰고 있다.
요즘은 'N잡러', '부캐'의 시대다. 내게 '작가'는 아직까지 N잡러를 운운하기에는 이르다. 하지만 충분히 '부캐'로서의 역량 발휘는 하고 있다.
어느 날 평소 구독하던 작가님께 제안 메일이 왔다. 제안은 그룹 기사를 함께 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감사하게도 내게도 기회가 왔고, 난 그 기회를 감사히 접수했다. 작년 여름 이후 5개월의 시간 동안 글로써 다른 작가님들과 소통했다.
짧게는 2주에 한 번, 길게는 3주에 한 번씩 원격으로 만남을 가졌다. 중간중간 오프라인 회동을 통해 글 벗으로서 서로의 글과 삶의 얘기로 더욱 깊이를 더했다. 서로 좋아하는 글로 만나니 더욱 소통이 편했다. 그렇게 난 새로운 인연을 맺었다. 내겐 글 쓰기 하나로 함께 소통할 공간과 벗이 생겨서 좋다. 이번 그룹 기사를 계기로 출간도, 꾸준히 글 소통할 벗들과의 만남도 이어가길 소망해 본다.
난 글쓰기에서 즐거움을 배우고, 익힌다. 벌써 오 년째다. 앞으로도 그 즐거움을 끊을 수 없다. 홀린 듯, 중독된 듯 앞으로도 꾸준히 쓸 것이다. 그래서 난 주말만 되면 일찍 일어나고, 평소에도 열심히 메모한다. 앞으로도 꾸준히 글을 쓰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