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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람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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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Oct 18. 2019

만원 지하철

금요일 퇴근 시간 칼퇴근의 설렘으로 발걸음이 가볍다. 평소보다 길게 늘어선 지하철 기다리는 줄은 기분 좋게 받아들인다. 안으로 진입하면 나에게는 두발만 간신히 버틸 수 있는 공간이 주어진다. 이제 시작이고 앞으로 다섯 정거장을 더 가야 환승 구간이 나온다.

문이 열릴 때마다 비좁은 틈을 밀고 들어오는 사람으로 나는 점점 뒤로 밀린다. 이제는 더는 허락될 공간이 없을 것 같은데 신기하게도 자리를 잡는다. 한없이 늘어나는 마법의 공간 같다. 이제 곧 종착지가 가까워진다. 다리에 꽉 준 힘을 풀고 내릴 준비를 할 무렵 열차가  전 전 정거장에 멈췄다.

문이 열리고 밖을 가득 메운 한 무리의 사람이 보였다. 초점 없는 눈이었다. 여기를 보아도 저기를 보아도 생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뭐지. 바싹 마른 몸에 남루한 행색이 모두 쌍둥이 같았다. 그들은 무례하기까지 했다. 힘으로 밀고 들어와 곳곳에 비명 소리도 들렸다. 이내 쾌쾌한 냄새가 안개처럼 퍼졌다. 말은 안 해도 최대한 접촉을 피하려는 눈치가 보였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그들 중 하나와 마주했다. 웃는 듯 우는 듯 가늠할 수 없는 표정에 눈은 끝도 없이 퀭했다. 계속 무언가를 중얼거렸는데 알아들을 수 없었다.

우리는 분명 같은 공간 속에 있다. 같은 숨을 내쉬고 있다. 근데 내 안에 피어나는 이질감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관심을 이내 거두고 핸드폰을 끄적였다. 애써 무시하려 노력했다. 한 정거장을 건너 드디어 종착지에 도착했다.

환승하기 위해 계단을 오르던 중 그들과 마주하기 전 들렸던 방송이 떠올랐다.

"이번 역은 경마공원, 경마공원역입니다. 내리실 분은 미리 준비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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