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실배 May 15. 2023

족구만 하던 그가 글쓰기 모임을 만나고 달라졌다

"나도 내가 이렇게 매일 글을 쓰게 될 줄 몰랐어!"

오후에 사무실에서 보고서 작성 중 알람이 계속 울렸다. 누구지 하며 열어보았더니 회사 동기 형이었다.


"신 과장. 내가 아침에 블로그에 글을 다 썼는데 발행 전에 다른 사이트 잠시 갔다가 다 날아갔네. 어쩌지."


"형. 그러면 복구가 안 돼. 글을 쓰고 중간중간 오른쪽 아래 보면 '저장'이라고 적힌 곳을 틈틈이 눌러줘. 그래야 날아가는 것을 막을 수 있어."


"오. 그렇구나. 잠시만. 내가 한번 해볼게. 근데 안 보이네. 앗 찾았다! 알겠어. 고마워."


아니, 이 형 이거 물어보려고 카톡까지 보냈단 말이야. 겉으로는 투덜댔지만, 속으로는 미소를 감출 수 없었다. 지난번 함께 참여한 외부 교육에서 글 쓰는 곳을 알려주었더니 꾸준히 쓰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게시판은 어떻게 만드는 거냐, 글씨체는 어떻게 바꾸냐, 글 공유는 어떻게 하는 거냐 등 수시로 궁금한 점을 전화나 카카오톡 메시지로 보냈다. 처음엔 저러다 말겠지 했는데, 급기야 생각지도 않은 일이 벌어졌다. 얼마 전 불쑥 전화 온 후 폭탄선언을 했다.


"네가 블로그에 공유한 것 보고 온라인 매일 글쓰기를 신청했다. 앞으로 잘 부탁해."


"진짜? 그거 매일 써야 하는데. 괜찮겠어?"


"한번 해보는 거지 뭐. 글 쓰는 거 은근히 재밌다."


매일 족구만 하던 사람이 글을 만나다

▲ 족구연습 동기 형은 매일 족구 타격기로 꾸준히 연습을 한다.              ⓒ 평생족구

온라인 매일 글쓰기 카톡 단체방이 마련되고 하나둘 회원이 입장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던 중 형의 이름도 보였다. 사실이었구나. 반가우면서도 아는 글벗은 나밖에 없고, 주로 여성들이 대다수인 이 공간에서 잘 버틸 수 있을 까 걱정도 되었다.


더구나 매일 쓰는 이야기가 생소한 '족구'에 관한 내용이었다. 공감도 못 받고 소통도 없이 금세 열정이 식을까 걱정되었다. 내가 열심히 방문해서 댓글을 달아주고 챙겨야겠다고 다짐했다.


매일 글쓰기가 처음 시작되는 날, 아침 일찍 카카오톡 메시지가 울렸다. 어떤 글 벗의 글일지 궁금해서 열어보니 맙소사 형이었다. 그 안에는 늘 상 있는 족구에 관한 이야기와 더불어 매일 글쓰기에 대한 단단한 각오가 적혀있었다.


그 뒤로 형의 글은 늘 1등이었다. 매일 새벽 7시가 되면 어김없이 족구에 관한 글을 써서 공유했다. 한 가지 주제로 꾸준히 쓸 수 있는지 신기하면서도 새로웠다. 무엇보다도 즐기는 마음이 글에 오롯이 나타났다. 단순히 족구란 스포츠에 관한 소개가 아니라 족구와 본인 삶을 절묘하게 연결 지었고, 큰따옴표 안에 각오를 다지는 짤막한 문장으로 멋스럽게 마무리를 지었다.


특히 디딤 발에 관한 글이 인상적이었다.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의 마지막에 오징어 그림 안에서 왼발로 버티는 장면으로 이야기에 슬슬 시동을 걸더니 야구나 축구 등 스포츠에서 눈에 띄지 않지만 중요한 점을 밝혔다. 그것은 바로 버티는 디딤 발이었다.


족구에서도 힘 있는 공격을 위해서는 디딤 발이 안정되어야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리곤 나의 디딤 발은 무언지 자기성찰로 넘어가더니 성실함이란 결론을 내렸다.


욕심 없이 그저 하나의 목표를 위해서 꾸준히 나아가는 모습과 더불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운동에 매진하지만, 그 자체로 행복하다고 했다. 역시 마지막에는 "140도, 다음 목표다. 날마다 찢는다"라며 새로운 목표를 설정했다.


그 글에 내 마음도 파도쳤다. 나 역시도 떠올려 보게 되었다. 하루하루를 버틸 수 있는 디딤 발은 무얼까. 출근길, 흔들리는 지하철 안에서 깊은 사색에 빠졌다. 하나가 불쑥 떠올랐다. 형의 글에 댓글로 응원과 감사함을 전했다.


누구나 자기 안에 글항아리를 갖고 있다

▲ 글 항아리 누구나 안에 글 항아리 하나는 갖고 있다.              ⓒ Unsplash

얼마 전 유명 작가의 북토크에 참여했다. 질의응답 시간에 어떤 분이 어떻게 그렇게 꾸준히 글을 쓸 수 있냐는 물었더니 내 안에 글항아리가 있고 그것이 차면 하나의 글로 완성이 된다고 했다. 그 말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이번에 동기형의 글을 만나며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형은 이미 글 항아리가 가득 차 있었다. 그간 인지하지 못했을 뿐. 지금 안에 담긴 이야기가 낡은 댐이 무너져 물이 쏟아지듯 터져 나오고 있었다. 그건 비단 형에게만 해당하지 않았다. 아마도 우리 모두 글 항아리를 갖고 있는데 누군가는 그걸 분출할 곳을 찾았고, 또 누군가는 찾지 못하고 안에만 머물렀다.


그래서인지 요즘 주변에 지인에게 글을 쓰면 좋겠다는 말을 많이 한다. 대부분 어떻게 글을 쓰냐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면서도 호기심 도는 눈빛을 보면 더 좀 꼬셔볼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참 좋은데. 뭐라 설명할 방법이 없네'라는 어느 광고에서의 웃긴 멘트처럼 한번 시작하면 삶이 바뀔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도 자극을 주었으니 언젠가 글 항아리가 더 차면 스스로 찾으리라 믿는다.


얼마 전 형과 통화할 기회가 있었다. 이제는 매일 글쓰기에 안정되게 안착해서 찾아와 댓글을 다는 글벗도 늘었고, 소통하는 이도 생기며 즐거워 보였다. 처음 내가 가졌던 걱정은 기우였다.


"형, 요즘 장난 아닌데. 글도 너무 재밌고, 어떻게 매일 족구에 관해서 쓰는지 신기하네."


"하하 그런가. 좋아하니깐 그러지. 사실 재밌긴 한데 어떤 글을 써야 하나 살짝 골치가 아프네. 그래도 쓰고 나면 숙제를 마친 듯 후련하구먼. 나도 내가 이렇게 매일 쓸 줄 몰랐네. 아내도 요즘 활력이 넘친다고 팍팍 밀어주고 있으이. 맨날 족구만 한다고 구박하더니만."


아침마다 설레는 마음으로 깬다. 오늘은 또 어떤 족구 이야기가 펼쳐질까. 어느새 열혈 독자가 되어 형이 발행할 글을 기대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