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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May 23. 2023

기타리스트가 되겠단 아들, 실제 공연을 보더만....

언제나 아들꿈을 지지하고픈 아빠마음

"아빠 나 기타리스트가 되고 싶어."


이게 뭔 소리 다냐. 얼마 전 아들의 폭탄선언에 우리 가족 모두 멘붕이 왔다. 아내는 공부를 회피하기 위한 핑곗거리로 치부했다. 물론 그럴 수도 있는데, 여태껏 무언가 되고 싶다고 말한 적인 없었는데 나는 걱정보다는 반가운 마음이 컸다.


아들이 사춘기가 진하게 왔을 때 그걸 풀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운동을 시켜볼까 했더니 생뚱맞게 기타를 치고 싶단다. 그래 좋다. 근처 학원에 등록했다. 그때부터 열심히 다니더니 집에서도 틈틈이 치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저러다 말겠지. 얼마나 가겠어.'라는 의구심도 잠시 생각보다 열심히 다녔다.


얼마 전 아들과 저녁 걷기를 하다가 갑자기 친구 공연 소식이 떠올랐다. 바로 카톡을 보냈더니 인천에 있는 '뮤즈 엘피바'란 곳에서 토요일 저녁에 공연이 있다고 했다. 아들과 함께 가겠다니 'ok'란 답이 왔다. 아들에게 카톡을 보여주니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 친구와의 인연은 대학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 보았을 때부터 범상치 않은 포스를 풍겼다. 어떻게 친해졌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함께 어울리는 무리가 되었다. 과방에서 담배를 물고, 기타를 치는 모습이 어찌나 멋있던지. 더구나 당구도 그 당시 200을 넘게 쳤다. 아직 고등학생 티를 벗지 못한 우리와는 다른 세계에 온 듯 보였다.


입학하자마자 대학 밴드 동아리에서 활동하고, 얼마 뒤엔 홍대에서 공연을 시작했다. 우리도 종종 놀러 가서 응원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실배야. 나 너희 집에서 며칠 지내도 되겠냐."


갑작스러운 말에 당황했는데, 알고 보니 집을 나왔단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 더구나 아버지가 목사였으니 기타리스트는 가당치도 않았다. 아버지와 심하게 다투고 짐을 싸고 나왔던 것이다. 며칠간 함께 지내며 그 친구를 깊게 이해하게 되었다. 갈망하는 일을 하고픈 절실한 사람에게서만 나오는 눈빛을 그때 처음 보았다.


결국 친구는 학교를 자퇴했다. 그리곤 실용음악과에 재입학을 했고, 우여곡절 끝에 음악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지금은 '블루다이아'라는 블루스 밴드의 리더이자 기타리스트로 활동 중이다. 가끔 공연을 보러 갔었는데, 코로나로 인하여 한동안 보지 못했다.


토요일 저녁에 아들과 함께 길을 나섰다. 인천에 도착하니 차가운 바람이 부는 스산한 날씨였다. '뮤즈 엘피바'를 찾아 거리를 어슬렁 대다 드디어 찾았다. 입구만 보아도 그 세월이 느껴졌고, 예전에 홍대 라이브 바 생각도 났다. 안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주스와 간단한 주전부리를 시켰다.

조금 있으니 친구가 밴드 멤버들과 들어왔다. 특유의 껄렁함으로 반가움을 대신했다. 20년 전에 처음 보았을 때나 지금이나 늘 한결같다. 반갑게 안부를 나누고, 아들을 소개해 주었다. 녀석은 어색한지 고개를 제대로 들지 못했다. 그래도 친구는 아들에게 여러 가지를 묻기고 하고, 기타에 관한 조언도 해주었다.  어느새 사람들이 가득 들어찼고, 본격적으로 공연이 시작되었다.


블루스를 무척 좋아하는 나는 오래간만에 라이브 음악에 심취했다. 슬쩍 옆을 쳐다보니 아들도 눈을 감고 음악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친구의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자 입까지 벌리며 감탄을 금하지 못했다. 친구의 연주는 막귀인 내가 들어도 전보하 훨씬 깊이 있고, 울림이 있었다. 오랜 세월 한길을 걸어간 장인이 내는 소리였다. 음악이 절정에 이르렀을 땐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흥이 나서 고개뿐 아니라 몸을 흔들며 즐겼다.

1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를 정도로 빠르게 흘렀다. 앞에 있는 친구에게 갔더니 땀에 흠뻑 젖었다. 공연이 좋았다고 엄지 척을 하니 씩 하고 웃으며 고맙다고 했다. 그리곤 이제 곧 2집이 나오니 그때 공연을 보러 오라고 했다. 나와 아들은 동시에 알겠다고 답을 했다.


돌아오는 길, 아들은 흥분을 주체 못 했다. 너무 대단해서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며 두 손을 올리며 과장된 몸짓을 보였다. 그리곤,


"아빠. 나는 기타리스트의 길을 포기해야겠어. 아무래도 안 되겠어. 너무 대단해."


아니, 결론이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는지 원. 아마도 너무 압도가 되었나 보다. 그러면서도 차에 블루투스를 연결해서 연신 록음악을 들었다. 좋았음이 분명했다, 다음번 공연도 꼭 가고 싶다고 했다.


결론이 원하는 방향으로 흐르진 않았지만, 이번 공연이 아들 가슴에 무언가를 심었길 진심으로 바라본다.


포기는 배추를 썰때나 하려무나 아들아!

블루다이아 공연실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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