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 무알콜이 아니라고!?
아내의 큰 그림이 의심스럽다
'이상하네. 왜 자꾸 어지럽고 열이 나지. 기분 탓인가.'
냉장고에서 무알콜 맥주를 두 캔 꺼내 하나는 아내를 주고 다른 하나를 내가 마셨는데 몸에 이상한 변화가 감지되었다. 이제 곧 아내의 지령에 따라 당근으로 구입한 에어프라이어를 받으러 가야 했다. 얼른 마시고 일어나려는데 둘째가 불러 세웠다.
"아빠. 얼굴 빨개진 거 봐. 맥주 마셔서 그런가 봐."
"응? 이거 무알콜인데?"
"아니야. 봐봐. 엄마 거랑 모양이 다르잖아?"
그런가. 자세히 살펴보니 허거덕. 진짜 맥주가 아닌가.
"아니 여보 무알콜 맥주 사 온 것 아니었어?"
"에고. 아까 급하게 오느라 하나는 그냥 맥주로 사 왔나 봐."
"뭐야. 이대로 운전하고 갔으면 큰일 날 뻔했잖아. 혹시 큰 그림 그린 것 아냐?"
"설마 내가? 절대 아니야. 당신이 냉장고에서 꺼냈잖아. 그런데 당신도 참 무디다. 나 같으면 한잔만 마셔도 바로 알 텐데. 쯧쯧"
둘이서 옥신각신 하는 모습이 재밌었던지 옆에 있던 둘째는 깔깔대며 웃더니 심지어 처음부터 알고 있었단다. 역시 우리 가족 중에서 가장 관찰력이 뛰어난 아이였다. 둘째 덕분에 큰일 날뻔한 사태를 막았다. 이대로 나갔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아내는 곧바로 당근에 연락해서 다음날로 약속을 변경했다.정말 아내가 나를 한방에 보내려고 그린 것은 아닐까. 합리적인 의심이 눈앞에서 둥둥 떠다녔다.
나의 강렬한 레이저 눈빛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내는 요즘 입덕하고 있는 BTS 영상을 보며 헤벌죽 웃고 있었다. 그래 저런 천진한 얼굴에서 그럴 리가 없지.
여보, 그런데 정말 아니지? 혹시 내가 잘못한 것 있으면 얼른 풀고 털어내길 바라요. 나 무섭단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