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색이 브런치 가족 작가인데 가족 글이 하나 없다
이제는 브런치 작가 키워드의 변경이 필요한 때
처음 브런치 작가가 된 후 몇 해간 마르지 않는 샘처럼 글을 썼다. 글감은 도처에 널려 있었다. 유치원 딸아이가 싱그러운 아침 햇살을 맞으며 내게 달려오는 순간, 초등학생 아들과 티격태격하며 몸 싸운 하던 일, 슬 권태기가 찾아온 아내와의 아슬한 줄타기 등 일상의 모든 내용이 내 손을 빌어 글로 탄생했다.
그러던 나의 브런치에 어느덧 가족 관련 글이 모습을 감췄다. 그나마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과의 이야기로 명맥을 근근이 이어가고 있다. 어제는 브런치에 접속해서 프로필 편집에서 작가 키워드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가장 맨 앞에 가족이란 단어가 위치했다. 왜 이리 부끄러운 걸까. 주르륵 다른 키워드를 살펴보았지만 대체할 마땅한 단어를 찾지 못해 그대로 두었다.
아내가 토요일에 일하는 직장이라 결혼 후부터 지금까지 토요일 육아는 내가 전담해왔다. 혹여나 회사에 급한 일이 생기면 딸을 유모차에 태우고, 한 손으로는 아들 손을 붙잡고 출근한 날도 있었다. 행여 아이들이 심심할까 봐 날이 좋으면 무조건 밖에 나가서 시간을 보냈다. 밥도 챙겨 먹여야 했기에 레시피를 보며 따라한 요리가 이제는 간단한 국 몇 가지는 뚝딱할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그 시간들 또한 나에게는 훌륭한 글감이었다.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그때의 기록을 지금도 가끔 꺼내 본다. 글 속에서 차츰 커가는 아이를 바라보면 흐뭇하면서도 무언가 마음 한구석에서 어떤 감정 하나가 차오른다. 그리움과 슬픔 그 가운데 어디쯤 위치한.
지난주 토요일 아이들을 깨워 늦은 점심을 먹였다. 설거지를 마치고 잠시 식탁에 앉아 커피를 마실 때쯤 딸은 벌써 밖에 나갈 채비를 서둘렀다. 학원을 가긴 전까지 친구를 만나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다. 옷을 몇 번이나 갈아입고, 바닥에 남은 옷가지를 널 부러트리고 금세 사라졌다.
그때쯤 아들도 나갈 준비를 마쳤다. 학원을 끊고 시간이 많아 집에서 보낼 줄 알았더니만 근처 스터디 카페를 다닌다. 사람이 안 하던 일을 하면 큰일 난다더만. 시험을 앞두기도 했고, 사춘기가 정점을 찍고 내려갔기에 그 좋아하던 방구석을 탈출해서 친구들과 자주 어울렸다. 공부 때문인지 친교가 목적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대찬성이라고.
텅 빈 공간에 덩그러니 혼자 남았다. 한때는 이 시간이 찾아오길 고대한 적도 있었지만 막상 현실이 되니 생각만큼 기쁘지 않네. 주섬주섬 가방 안에 노트북, 책, 거치대 등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근처 카페에 가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출간을 위한 원고도 퇴고해야 했고 마감을 앞둔 기사도 있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가족에 관한 글은 보이지 않았다. 드르륵. 핸드폰 진동이 울리고 딸의 목소리가 들렸다. 학원 끝나고 친구와 저녁을 먹고 온단다. 알았다고 끊는 순간 이제는 아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친구 집에 놀러 가서 저녁쯤 온다고 했다.
녀석들. 오늘 담합이라도 한 걸까. 아내와 오붓하게 식사하라고 자리를 피해 주려나 싶어 고맙다 할 때쯤 아내에게서 카톡이 왔다. 동네 언니와 약속이 잡혀 아이들 밥 잘 챙기라는데 그냥 알겠다고 답했다. 그래 잘 되었네. 글이라도 모두 마무리해야겠다.
이제 슬슬 키워드 고민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어떤 주제의 글을 쓸지까지도. 브런치 작가 키워드에 가족이 빠지면 그 자리는 무엇이 될까. 나도 궁금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