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가 중학교 2학년이 되면서부터 아내는 본격적으로 학업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수학이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다니던 학원은 선행학습을 많이 시키는 곳이어서 첫째가 잘 따라가지 못한다고 했다. 계속 앉아서 아까운 시간만 보내느니 차라리 다른 학원으로 옮기는 편이 나겠다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얼마 뒤 회사에서 퇴근하고 돌아와 함께 식사하다가 수학 학원이 궁금해서 아내에게 물었다.
"여보, 첫째 학원은 어떻게 되었어? 옮겼어?"
"응. 그런데 학원은 아니야."
"그럼, 어디로?"
"과외로 바꿨어. 자기도 알지. 첫째 친구 민석이 엄마. 최근에 만나서 수학 고민을 털어놓았더니 본인이 해주겠다고 해서 다음 주부터 민석이네서 배우기로 했어."
일단 학원을 옮긴 일은 잘되었으나 솔직히 깜짝 놀랐다. 민석이는 첫째 초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 친구였고, 다른 친구 3명과 함께 엄마들끼리도 친해져 동네에서 자주 만나면서 언니 동생 하는 사이였다.
▲ 현대 도시의 신개념 품앗이 가까운 이웃이 선생님이 되어 자녀 학업을 돕는다. ⓒ Pixabay
덕분에 아빠들도 알게 되어 가끔 만나서 소주도 한잔하며 지냈다. 민석이 엄마가 전부터 과외를 해왔던 것은 알고 있었으나 첫째 수학 선생님이 될 줄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내에게 첫째가 불편하지 않을까 우려를 나타냈더니 괜찮다고 했단다.
다행히 지금까지도 잘 다니고 있다. 친구 엄마에서 선생님이 된 상황이 어떤가 싶어 물어보면 잘 가르쳐주는데 잘못하면 따끔하게 혼도 내며 무섭다고 했다. 늘 웃는 얼굴에 밝은 모습만 보아서인지 그 모습이 언뜻 떠오르지 않았다. 다음에 만나면 민석이 엄마 대신 선생님이라고 불러야 하나 생각하니 괜스레 마음이 어색해졌다.
동네에 독서지도 수업이 생기다
한 달 전쯤이었다. 주말에 한가로이 쉬고 있는데, 아내가 갑자기 첫째 친구 동석이 엄마가 나에게 연락을 할 테니 잘 받고 도움을 주라고 했다. 밑도 끝도 없는 말에 당황이 되었는데 정말 연락이 왔다.
이유인즉슨 동네에 공간을 만들어 독서지도 수업을 할 예정인데 도움을 달라고 했다. 나야 뭐 독서 모임에 꾸준히 참여한 경험밖에 없는데 필요한 것은 등록 절차라든지 운영을 위한 실질적인 도움이었다. 그래서 평소 알고 지낸 독서 모임을 운영하는 대표님과 북카페를 운영하는 사장님을 소개해주었다.
꽤 빨리 공간이 만들어졌다. 아내와 함께 방문했더니 넓고 쾌적해서 아이들이 수업받기 좋았다. 축하 선물도 건네고, 조촐한 파티도 했다. 이제 시작이라 수강생 모집이 가장 큰 걱정이었다. 작년에 동석이 엄마는 모 대학에서 독서지도사 자격증도 취득하였다고 했다. 그간 자원봉사로 동네 아이들을 대상으로 책 수업을 진행해왔다고 했다. 책을 읽고 나누는 것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잘 알기에 나도 한가득 응원을 보냈다.
그리고 며칠 뒤, 토요일 오후에 둘째가 급히 짐을 챙겨서 밖으로 나가길래 물었더니 책 수업한다고 했다. 장소는 바로 얼마 전에 문을 연 동석이 엄마의 공간이었다. 안방에 있던 아내는 밖으로 나와 둘째를 배웅하며 이제부터 매주 그곳에서 책 수업을 받을 예정이라고 했다.
나야 책 관련된 수업은 무조건 찬성이었지만, 또다시 첫째 친구 엄마가 선생님이 되는 상황이 흥미로웠다. 둘째는 민석이 동생과 함께 동네 같은 또래 4명과 함께 수업받는다고 했다.
현대판 품앗이
이쯤 되니 예전 교과서에서 보았던 '품앗이'가 떠올랐다.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힘든 일을 서로 거들어 주면서 품을 지고 갚고 하는 일을 뜻한다고 했다. 한국의 공동 노동 중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되었고, 한 가족의 부족한 노동력을 해결하기 위해 다른 가족들의 노동력을 빌려 쓰고 나중에 갚아주는 형태였다. 주로 가래질하기, 모내기, 물대기, 김매기 등에 집중적으로 활용되었고, 최근에는 농촌에서도 노동을 노동으로 갚는 대신 돈으로 지급하는 임금노동으로 바뀌는 추세라고 한다.
교과서에서만 보았던 일이 실제 일어났다. 그런데 비단 우리 집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다. 온라인 글쓰기를 하는 지인이 자녀 친구네와 품앗이를 하고 있었다. 지인은 자녀와 그 친구에게 글쓰기 수업을 하고, 상대편 아빠에게는 수학 수업을 받는다고 했다. 서로 주특기를 살려 부족한 점을 채우고 있었다. 물론 그 대가는 무료였다.
뿐만 아니었다. 또 다른 지인은 일종의 공동 육아로 자녀 보육을 했다. 일반 어린이집과는 달리 모든 부모가 시간을 정해 돌아가면서 선생님 역할을 맡아 적극적으로 육아에 개입했다. 더불어 어린이집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교육과정도 부모들이 참여해서 의결과정을 거쳤다. 부모가 단순히 아이를 맡기는 것을 넘어 직접 개입하며 도움을 주고받는 형태였다.
언젠가 만나 이렇게 시간을 내고, 교육을 하는 것이 힘들지 않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어려운 점은 분명 있으나 오롯이 아이를 돌볼 수 없는 상황에서 이렇게 뜻이 맞는 사람들과 조금씩 나눌 수 있어서 큰 힘이 된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아이 관점에서 엄마, 아빠가 함께하니 얼마나 안심되고 좋았을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주변에서 이런 사례를 계속 접하고 나니 새로운 시대의 흐름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단순히 친목을 넘어 신뢰를 바탕으로 도움을 주고받는 신개념 품앗이였다. 나 역시도 처음에는 살짝 부담되기는 했으나 예전부터 보아왔던 믿을 수 있는 이웃에게 아이를 맡긴다고 생각하니 안도가 되었다.
▲ 아이들 통학 도우미 아이들 통학 도우미가 되다. ⓒ Unsplash
이렇게 도움만 받을 순 없었다. 아내와 상의 끝에 주말에 첫째와 친구들이 함께 다니는 학원을 데려다주고 오는 역할을 맡기로 했다. 걸어가면 20분 이상 걸리는 거리여서 내가 각자 집에 들러 태우고 가면 되었다. 이번 달부터 시작했는데, 아이들이 만족해서 다행이었다. 더운 날 그 먼 거리를 걸어 다니느라 고생이 많았으리라. 별일 아니었지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어 기뻤다.
각박한 세상에서 한줄기 따스한 빛을 보다
점점 사회는 각박해져만 간다. 같은 동네에 살더라도 서로 인사 나누고 사는 주변도 거의 없다. 하긴 나조차도 옆집이나 아랫집, 윗집에 누가 사는지도 잘 알지 못했다. 뉴스에서 나오는 이웃 간의 험한 기사를 접하고는 오히려 두려움마저 들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이렇게 서로 도움을 받는 일이 얼마나 값진 일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아이를 통해 만났지만, 오랜 기간 교류하며 친한 지인이 되고, 거기서 머물지 않고 아이들 학업에까지 선한 영향력을 미치니 이보다 좋은 일이 또 있을까.
이제 한가지 바람이 있다면, 계속해서 이분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나가고,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도 서로에게 힘이 되는 좋은 친구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