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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Jul 31. 2023

장인어른, 아버지의 또 다른 이름

보고픈 장인어른을 그리워하며

“여보. 아빠가 위독하시데. 지금 병원으로 빨리 와요.”     


다급한 아내의 목소리에 나는 그 자리에 나무토막처럼 굳었다. 시계를 쳐다보니 새벽 6시였다. 다행히 당직근무가 끝날 시간이라 교대 근무자에게 인계하고 회사 밖으로 나왔다. 택시를 잡고 곧장 신촌 세브란스 병원으로 향했다.      


택시 안에서 아내에게 연락했다. 아내는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아직 장인어른이 의식이 있으니 어떤 말이든 해보라고 했다. 수만 가지 단어가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고작 내 입에서 나온 말은 ‘아버님, 힘내세요.’란 말뿐이었다. 눈시울이 붉어지며 계속 같은 말만 반복했다.     


택시에 내리니 아내는 응급실 앞에 쪼그리고 앉아 흐느끼고 있었다. 아내를 안고 나 역시도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이윽고 처남과 처남댁이 도착했다. 담당 의사의 호출이 있어 가족 모두 모였다. 알기 어려운 전문 용어 속에 결국은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말로 끝을 맺었다. 믿기지 않은 현실에 우리 모두 서로의 슬픈 눈동자만 바라보았다. 장인어른은 채 하루를 버티지 못하고 우리 곁을 떠났다. 혈액암을 판정받고 겨우 석 달 만이었다.     


아내와 1년쯤 사귀었을 때 장인어른을 처음 뵈었다. 저녁 식사 자리였는데, 얼마나 긴장되었는지 모른다. 뚫어져라 나를 바라보는 모습에서 마치 시험장 의자에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갑작스레 앞으로의 비전을 물어 하마터면 체할 뻔도 했었다. 다행히 답이 괜찮았는지 이후 결혼까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아내와 결혼한 후 1년 만에 첫째 아이가 태어났다. 그 당시 일주일에 한 번은 당직근무가 있어 아내 홀로 아이와 집에 있어야 했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인근에 있었던 처가댁에 가 있도록 한 것을 계기로 합가 하게 되었다. 보리가 서 말이면 처가살이는 하지 말라는 말도 있듯이 처음엔 낯선 환경으로 들어가는 것이 두려웠었다. 하지만 걱정은 기우였다.      


함께 살을 부대끼며 살아가며 바라본 장인, 장모님은 참 어른이었다. 특히 장인어른은 무뚝뚝함 안에 살가운 정이 가득했다. 자칫 집 안에서 겉돌 수 있는 나를 살그미 챙겼다. 사위가 아닌 아들처럼 대하며 좋은 것이 있으면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고 했고, 힘들고 어려울 땐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어릴 때 아버지가 지방 근무로 오래도록 떨어져 있어 그 정이 그리웠었다. 장인어른과 함께 살며 그때의 빈자리를 하나둘 채워 나갔다. 특히 산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어느 날 퇴근하고 집에 왔더니 불쑥 지리산에 가자고 했다. 언젠가는 꼭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곧바로 회사에 하루 연가를 내고 주말을 포함해서 2박 3일간 둘이서 지리산 종주를 했다. 평소 산악회 활동을 꾸준히 한 장인어른은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나보다도 훨씬 산을 잘 탔다.      


함께 걸으며 삶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내가 가는 길 모두 이미 장인어른이 이미 지나간 길이었다. 산 정상에서 나란히 의자에 앉아 바라보았던 그림 같았던 일몰, 잠시 쉬며 나눠 마셨던 시원한 물, 이제 곧 다 왔다며 큰소리로 격려했던 우렁찬 목소리가 10년이 훌쩍 지났음에도 여전히 마음속에 살아 숨 쉰다.     


얼마 전 가족들과 장인어른을 모신 용인 평화의 숲을 다녀왔다. 미리 준비한 산에서 찍은 독사진, 칠순에서의 가족사진, 장모님과 둘이 찍은 사진을 봉안당 유리에 붙였다.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며 몹시 그리웠다. 지금이라도 눈앞에서 특유의 너털웃음을 지어 보일 것 같은데. 이제는 시간에 기대어 그 큰 빈자리를 천천히 메꿔 나갈 수밖에 없다.     


“아버님, 저에게는 장인어른을 넘어 아버지와 같은 존재셨어요. 고맙고, 너무 보고 싶어요. 함께 살면서 이 말 한번 못했는데 정말 사랑합니다. 이제는 그곳에서 편히 쉬세요.”     



월간에세이 8월호에 제 글이 실렸습니다. 처음 청탁 제의를 받고 올 3월에 우리 곁을 떠난 장인어른이 가장 먼저 떠올랐습니다. 언젠가 글로써 꼭 제 마음을 전하고 싶었는데, 좋은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언제나 커다란 버팀목이 되어준 장인어른의 빈자리가 여전히 너무 크네요. 가족 모두 그리운 마음 가득합니다. 조만간 가족 모임이 있을 예정인데 그때 장인어른과 함께 했던 추억을 곱씹을 예정입니다.


이제는 좋은 곳에서 마음 편히 계시길 진심으로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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