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 강사 워크숍이 용인에 있는 한라인재개발원에서 1박 2일간 진행되었다. 전국에서 활동하고있는 강사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뜻깊은 날이었다. 매년 정해진 강의를 하고 있지만 오전, 오후로 나뉘는 일정으로 기껏해야 다른 강사 한 분을 스치듯 보는 것이 다였다. 이렇게 워크숍을 통해서 모두 만날 수 있으니 괜스레 설렜다.
특히 이번 일정 중 두 가지가 의미 있게 다가왔다. 먼저 강사로 활동 한지 5년 만에 위촉장을 받게 되었다. 사내 강사로 발을 내디딘 시기가 하필 2019년으로 코로나가 한창 만연하던 시기였다. 그러다 보니 모여서 행사를 진행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렇게 한 해, 두 해 흘렀고 5년이 훌쩍 지났다.
다음으론 재심으로 유명한 박중연 변호사의 특강이었다. 내가 강의하는 분야가 '인권 감수성'으로 직원들이 인권 의식을 갖고 현장에서 일하도록 만드는 역할이다. 누구보다 약자 편에 서서 억울한 이의 인권을 대변해 온 박중연 변호사였기에 많이 배우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오전부터 일정이 시작되어 일찍 출발했는데 5호선에서 9호선, 그리고 다시 신분당선으로 이어지는 환승은 지옥철 그 자체였다. 5호선을 1시간 가까이 타고 가야 하는 출근길을 멀다고 불평하곤 했는데 매일 이런 구간을 지나야 하는 분도 있으니 감사함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종 양재역에서 광역버스를 타고 용인까지 가야 하는데 도통 버스가 오지 않았다. 결국 최대한 근처까지 갔다가 택시를 타고 간신히 정시에 한라인재개발원에 도착했다.
워크숍 첫 일정으로 새롭게 뽑힌 4기 강사의 인사가 있었다. 나이를 떠나 새내기는 언제나 풋풋한 법이다. 아직 정식으로 강의도 시작하지 않았기에 연신 많이 배우는 시간이 되겠다는 말이 이어졌다. 순수 자원봉사인 이 험난한 길에 선뜻 발을 내디딘 그들 모두가 고마웠다. 선배로서 무언가를 전해주어야 할 텐데 하는 고민도 더했다.
이대로 끝날 줄 알았는데, 기존 강사도 소개를 하란다. 기수별로 진행되었다. 다들 강사 아니랄까 봐 1분 이내로 간단히 하라는데 5분씩 하는 것이 아닌가. 나까지 더하긴 그래서 짧게 말하고 말았다. 내향인 강사로서 준비 없는 이런 상황이 여전히 쉽지 않다.
소개 만으로도 점심시간이 다 되었다. 직장 생활하며 출장도 다니고 여러 곳을 다녀 보았지만 여기 밥이 최고였다. 삼삼오오 모여 맛난 식사를 마치고 근처 예쁜 카페에 가서 차를 마셨다. 평일 점심임에도 사람들로 가득했다. 모두 전국에 흩어져 있기에 각자 만이 가지고 있는 소식도 전하고, 순간순간 터지는 유머의 향연으로 웃음꽃이 떠나질 않았다. 다들 끼가 보통이 아니다. 범상치 않다는 표현이 딱 맞는 인물들이었다.
오후에는 기대했던 박중연 변호사 강의였다. 화면에서 보았던 선한 인상으로 최근에 맞은 재심 사건으로 바쁜 중에도 의미 있는 곳이라 왔다는 말이 감사했다. 처음 PPT 화면을 띄웠는데 어디서 많이 본 블로그가 보였다. 맙소사 내가 버스 타고 오면서 쓴 블로그 글이었다. 강의 오기 전 검색을 했더니 나왔다며 누구냐는데 수줍게 손을 들었다. 강의를 기대해 주어 고맙다며 몬스테라 작가 저자 사인본이 담긴 책을 선물해 주었다. 역시 매일 글을 쓰니 이런 날이 오는구나. 신기하면서 감사했다.
이어지는 강의는 기대보다 훨씬 좋았다. 얼마나 유머러스한지 초반에 내내 웃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준비한 PPT 자료도 어렵지 않게 주로 사진 한 장으로 구성되었고, 그 안에서 많은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구구절절 담기보다 중요한 포인트만 딱딱 짚어 들려주는 모습에서 베테랑 강사 포스가 느껴졌다.
무엇보다 그분의 시선이 좋았다. 아무리 악랄한 범죄자라도 분명 그들과 그들 가족이 보호받아야 할 인권이 있고, 우리가 너무나 쉽게 누군가를 대상화하고 무분별한 비난을 하는 것은 아니지에 관해서 내내 생각하게 만들었다. 유명세에 기대 조금은 우쭐할 줄 알았는데 여전히 낮은 자세로 사회적 약자를 위해 힘을 쏟는 모습에서 정말 좋은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여러 사례를 들려주어 2시간이란 시간이 정말 짧게 느껴졌고, 무언가 내 안에 꽉 찬 듯한 느낌이 들었다. 강의를 마치고 얼른 다가가 함께 사진도 찍었다. 꽤 오래도록 마음 안에 남을 강의였다.
드디어 위촉장을 받는 시간이 찾아왔다. 이번에 새롭게 수장이 된 분께서 직접 오셔서 한분 한분 위촉장을 전달하고 악수를 하며 격려를 해주었다. 한낱 종이일 뿐인데 이게 뭐라고 그간 없던 책임감이 샘솟는지. 나란 사람도 참 세속적이다. 뿌듯한 마음에 가족 톡방에 공유를 했다. 옆에서 4기 후배가 자기는 강의도 안 하고 받았다며 머쓱하다는데 앞으로 많이 하면 되지 하며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위촉 기간은 2년이었다. 농당처럼 2년 계약직이라며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제대로 안 하면 다음번엔 위촉이 안될지도 모를 일이다.
잠시 팀별로 모여 내년도 강의 일정을 짰다. 나는 상반기 강의를 지원했고, 계속해왔던 역할극을 활용한 인권교육 파트를 맡았다. 다른 파트도 해보았지만 역시 함께 움직이고 활동하는 강의가 나 스스로도 즐겁고 좋았다. 간사가 정해진 강의 일정을 가톡방에 올려주었는데, 이제 시작이란 현실감이 확 다가왔다.
저녁에 지하 식당에서 만찬이 있었다. 그간 코로나로 인하여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없었는데, 원 없이 즐겼다. 출장 뷔페에 와인의 조합이 좋았다. 식당이 문을 닫을 시간이 되자 2층으로 자리를 옮겨 자정이 다 되도록 왁자지껄 떠들고 놀았다. 때론 새털보다 가볍게, 때론 철근보다 무겁게 주제를 나누면서. 당직자가 이만 끝내면 좋겠다는 통보를 받고 아쉬운 발길을 돌렸다.
다음날 아침은 일찍 잠에서 깼다. 침대에 뒤척이다 그대로 나와 지하 헬스장으로 향했다. 요즘 라라크루 글쓰기 모임에서 쑥과 마늘이란 소모임 활동 중이다. 나는 매일 만보 걷기를 하며 그 사진을 인증하고 있다. 이런 구속력이 있으니 어떻게든 몸을 움직이게 된다. 러닝머신에서 열심히 뛰고, 근육 운동도 했다. 아침을 운동으로 시작하니 이보다 상쾌할 수 없었다. 아침은 센스 있게 북엇국이라 해장도 하며 다음 일정을 준비했다.
조가 구성되었고, 각자 강의에서 어떤 교안을 활용하는지를 나누었다. 기본 교재가 있기는 하지만 강사 나름대로 자기에게 맞게 구성해서 활용했다. 생각지도 못한 쌈박한 내용들이 많아서 내 강의에 활용할 수 있도록 열심히 묻고 기록했다. 어쩌면 이 시간이 이번 워크숍의 하이라이트가 아닐까 싶다. 서로가 잘하는 강점을 나누고, 강의를 하면서 만나는 암초를 함께 고민하며 해결점을 찾아가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쉬는 시간도 잊은 채 열띤 토의를 나눴다.
점심을 먹고, 강의장에서 간단히 총평을 마치고 1박 2일간의 일정이 모두 마무리되었다. 부산, 광주까지 먼 길을 떠나야 하는 강사들도 있기에 악수도 나누고, 포옹도 하며 서로를 격려했다. 이제 한동안 서로 얼굴 볼 날이 없으리라. 내부 강사라는 책임감을 가지고 내년 한 해도 멋지게 활동할 그들 모습이 그려져 홀로 뿌듯했다. 나도 뒤처지지 않도록 열심히 노력해야겠지.
그간 오랜 기간 직장 생활을 해오면서 사내 강사 활동하길 정말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늘 그렇고 그런 날들 속에 신선한 자극을 불어 넣는다. 퇴직하는 그날까지 사내 강사란 이름을 갖길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