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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Nov 24. 2023

70살의 나에게 쓰는 편지

꿈을 꾸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믿음

굽은 등, 새하얀 머리카락, 살짝 절룩거리는 걸음까지 영락없는 노인 그 자체네요. 세월을 정면으로 맞은 그 모습이 왠지 처량하기보다 오히려 더욱 빛나는 까닭은 왜일까요.


아마도 그건 지금 가장 설레는 일을 하기 때문이겠지요. 벌써 10여 년 전이네요. 퇴직하고 문경의 자그마한 마을에 서점을 내겠다고 했을 때 당신 아내뿐 아니라 아들, 딸 모두 반대를 했었죠. 평생 시계추처럼 회사 집을 오가든 사람이 자영업을 하겠다니요. 더구나 당신처럼 숫자 관념도 없고, 꾸미는 센스도 없는 사람이요.


퇴직금 일부를 투자하고 싶다고 간을 배 밖에 내놓은 말을 하고는 거의 일주일을 방문 걸어 잠근 아내에게 빌고 또 빌고는 더는 추가 자금을 쓰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는 간신히 허락받았죠. 지금도 궁금해요. 그렇게까지 서점을 하고 싶었는지요.


가만 보니 언젠가 스치듯 말해 준 듯해요. 당신의 글쓰기 스승이 북카페를 내고 그곳에서 독서 모임도 하고 글쓰기 수업도 받으며 조금씩 마음 안에 씨앗 하나를 키워나갔다고. 그곳에만 가면 찌든 삶의 찌꺼기가 거짓말처럼 사라진다고 아이처럼 해맑게 웃는 모습이 어찌나 천진난만해 보이던지.


오십이 훌쩍 넘어 바리스타 자격증을 딴다고 퇴근 후에 쏜살같이 학원에 달려가 젊은 친구들 사이에서 고생 많았어요. 하트 모양이 무슨 찌그러진 단팥빵같이 보여 선생님께 온갖 구박을 받으면서도 결국 1급 자격증까지 땄지요. 세 번이나 떨어진 건 안물안궁이랍니다. 특출 나게 잘하는 건 없어도 그저 묵묵히 한 길만 바라보고 나아가는 것, 그 긴 직장생활을 버티게 만든 힘이었지요.


하필 문경이었을까요. 장모님 뵈러 한두 번씩 갈 때마다 읍내에 있던 유일한 돈까스 집을 가곤 했었죠. 가만있자. 거기 이름이 뭐였더라. 맞다. ‘카페 올드’였죠. 맛도 맛이지만 내부가 예스럽고 운치가 있었죠. 운명이 분명 맞아요. 퇴직을 얼마 앞둔 마침 그때 사장님 서울로 간다고 가게를 내놓았잖아요. 아내에게 말도 없이 덜컥 계약금 500만 원이나 내놓곤. 가뜩이나 새가슴이 덜덜 떨던 모습이란.


처음 몇 년간은 참 고생 많이 했더랬죠. 아침 일찍부터 커피를 내려놓곤 저녁때까지 손님 하나 없이 덩그러니 서점에 있곤 했어요. 아무리 시골의 조그만 책방이라지만 운영비며 도서 구매비 등 매달 나가는 돈이 한두 푼이 아닌데 각서까지 썼으니 더는 나올 돈도 없고. 그나마 몰래 모아 둔 비상금이 아니었으면 더는 버티지도 못하고 문을 닫았을 것이 불 보듯 뻔했겠죠.


그래요. 당신 참 많이 노력했어요. 그때부터 인근 학교 방과 후 글쓰기 교사도 하고, 자비를 탈탈 털어 유명 작가의 북 토크도 열고, 국가에서 지원하는 문화사업도 신청해서 유치하는 등 모르긴 몰라도 회사 다닐 때보다 갑절은 일했을 것에요. 보다 못한 아내가 내부 인테리어도 예쁘게 꾸며주어 나중엔 나름 지역 명소로 사람들이 찾는 곳이 되었죠. 그때 살짝 아내랑 같이해볼까 고민했지만 안 하길 정말 잘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부부간에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죠.


지난번 글쓰기 수업에는 10대 고등학생부터 60대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함께하며 서로의 삶을 나누고 보듬고 위로했어요. 마지막 시간 완성된 한 편의 에세이를 돌아가며 읽는데 모두가 펑펑 울며 울음바다가 되었죠. 글이란 참 그래요. 그때 수강생들에게 한 말이 두고두고 기억이 남아요. 화려한 미사여구 하나 없더라도 솔직한 나를 드러내면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좋은 글이 된다는 말. 당신이 처음 글쓰기 수업을 받았을 때 선생님이 해주었던 말이었죠.


침 느지막이 일어나 천천히 주변 산책을 하고 근처 빵집에 들러 좋아하는 크루아상을 사서 곧바로 서점으로 향하죠. 커피를 내려 서점 안을 고소함으로 가득 차게 만들어요. 그리곤 손님 맞을 준비로 분주합니다. 고전 독서 모임이 있거든요. 하나둘 회원들이 참석하고, 이내 열띤 토론이 이어집니다.


점심은 집에서 간단히 먹고 다시 서점으로 와서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요. 재즈 음악을 들으며 독서를 하면서요. 그러다 단골손님이 책을 사러 오면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지요. 어느새 저녁 글쓰기 수업이 다가왔네요. 오늘 주제는 ‘사물’이에요. 다들 어떤 글을 써왔을까 기대 가득합니다. 모두가 떠난 서점에서 주말에 전주 도서관에서 있을 강의 준비로 마무리합니다. 하루가 분주하게 흘러갔지만, 당신은 지친 기색 하나 없네요.


아 참. 지난번 글쓰기 회원들이 서점에 왔었잖아요. 맙소사 그날은 글쓰기 30주년 기념 모임이었어요. 20명이나 참여해서 서점 안이 꽉 찼더랬죠. 음식도 정성스레 차리고, 와인을 마시며 밤새 이야기꽃을 피웠죠. 그 긴 시간 매일 글을 통해 서로의 삶을 바라보았기에 그저 함께 있는 그것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해 보였어요. 농담처럼 호호 할머니,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쓰자고 했는데 그 약속이 현실이 되었네요.


근처에 예약한 근사한 숙소에 회원들을 모시고, 다음날, 천천히 일어나 문경새재 도립공원에서 산책하고, 저녁엔 문경약돌한우축제에 가서 고기 파티도 열며 1박 2일간의 진한 일정을 모두 마무리했어요. 하지만 아쉬움보다는 기대가 컸어요. 아지트가 있으니 언제든 다시 만날 테니깐요.


일흔이 된 나이에도 당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이 참 보기 좋네요. 내가 당신에게 다가갈 시간은 아직도 많이 남았지만, 이곳에서도 한가득 응원을 보냅니다. 꿈은 꾸는 자에게만 주어진다는 말처럼, 나 역시도 여기서 열심히 따라가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드릴 말이 있는데요. 틈틈이 운동도 하면서 건강을 잘 챙기길 바랄게요. 그래야 더 오래도록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을 테니깐요. 이제 정말 펜을 놓을게요. 당신도 당신의 책방도 파이팅입니다.


오늘 편지는 70살이 된 나에게 쓰는 편지입니다. 최근에 모리 교수가 쓴 '이토록 멋진 인생이라니'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노년에 관한 책이었는데, 나이 듦은 아무런 생각 없이 그냥 흘러가도록 둘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문득 70살이 된 나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더니 마음속에 품고 있던 꿈 하나가 뾰족 튀어나오는 것 있죠. 그 꿈이 이루어졌다는 가정하에 편지를 쓰면서 행복했습니다.





#라라크루, #라라크루라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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