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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Nov 28. 2023

시장에 가면 추억을 한가득 사 먹고 온다요

시장은 물건만 파는 곳이 아니다

내가 살던 동네엔 시장이 있었다. 어릴 때 어머니가 장을 보러 갈 때면 꼭 옆에서 따라나섰다. 왜냐하면 공떡이라도 하나 떨어졌기 때문이다. 시장은 늘 먹거리가 풍성했다. 가다가 호떡을 사달라고 조르고, 푹 삶은 옥수수, 꿀떡도 먹고 싶다고 떼쓰고 어머니가 진도가 나가지 않을 정도로 괴롭혔다.


평소 입 짧은 녀석이 웬일인가 싶어 어머니는 주저 않고 먹고 싶은 것을 사주셨다. 특히 시장 안쪽 골목에 유명한 떡볶이 집이 있었는데, 어머니도 좋아하는 곳이라 장을 다 보고 나서는 둘이서 간이 의자에 앉아 2인분을 시켜서 나눠 먹었다. 지금에 비할 수 없이 그저 밀떡과 어묵 몇 개 들어간 초라한 떡볶이임에도 왜 그리 맛있었는지 모른다. 입가에 빨간 국물을 잔뜩 묻히고 호로록 먹고 있으면 어머니는 봄에 핀 민들레꽃 같은 미소를 지으며 휴지로 입을 닦아 주셨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시장 한구석을 부수고 공사가 진행되길래 무얼까 궁금했는데 그곳에 작은 극장 하나가 들어섰다. 큰 시내를 나가야만 볼 수 있었던 극장이 동네에 생기니 신기하면서도 몹시 설렜다. 표 값도 대형 극장의 절반 수준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열심히 용돈을 모아서 동네에 함께 살던 친척 동생과 보러 가곤 했는데 그때 보았던 '새엄마는 외계인', '불가사리', '길버트그레이프' 등 지금도 다양한 영화를 섭렵하는 취향에 큰 영향을 미쳤다.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쯤, 극장에 19금 영화가 상영되고, 급기야 동시상영까지 이루어지더니 어느 순간 문을 닫아 버렸다. 프랜차이즈 영화관이 새롭게 들어서는 순간 자그마한 동네에 더구나 시장 한구석에 있는 동네 영화관이 설 곳이 더는 없음이 자명했다. 시장에 먹거리가 아닌 최초의 볼거리를 제공한 영화관은 그렇게 마음 한구석에만 남고 사라졌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시장 입구에 있는 독서실을 다녔다. 낡은 건물 3층에 있었는데, 공부가 2였으면 나머지 8은 친구들과 떼 지어 다니며 놀기 일쑤였다. 특히 고3이 되어서는 독서실에 살다시피 했는데, 그 당시 총무 형이 대학생이었는데, 우리를 데리고 시장에 있는 포장마차를 가곤 했다.


술은 어른(?)에게 배워야 한다며 오뼈를 시켜놓고 독한 소주를 한잔 가득 부어 주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랑 몇 살 차이도 나지 않던 형이 얼마나 어른스럽고 멋지던지. 술도 처음 마셔보는 숙맥들이 얼굴은 새빨갛고, 혀는 꼬여서 헤롱 댔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미리 알지 않아도 될 쓴맛을 맛보고는 결국 수능도 망치고 인생의 쓴맛을 제대로 맛보았다.


대학에 들어가고 신세계를 접하고는 더는 시장에 발길을 끊었다. 더구나 결혼해서 동네를 떠나곤 어느새 까맣게 잊힌 존재가 되었다.


올 초에 어릴 적 친구들과 오래간만에 옛 동네에서 모임이 있었다. 번화가 술집에서 한잔 하다가 불쑥 그때의 추억이 떠올라 시장에 가보기로 의기투합했다. 캄캄한 골목을 시커먼 아재들이 돌아다니며 이곳엔 무엇이 있었지, 저곳엔 또 뭐가 있었네 하며 실컷 라테질을 하던 중 맙소사 고등학교 때 있었던 포장마차를 발견한 것이 아닌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안에 들어가니 그 시절과 별반 차이 없는 갈라진 벽에, 파란색 플라스틱 의자 등 옛것 그로였다. 심지어 그때는 아주머니였던 이제는 할머니가 된 사장님이 있었다. 여전히 풍성한 오돌에 소주를 시켜 그 시절의 추억을 왁자지껄 나누던 중 누구 하나가 사장님께 예전에 자주 왔었다고 말하니 알 것도 같단다. 물론 팬서비스임을 알지만 믿고 싶었다. 그날은 새벽이 다 되도록 부어라 마셨다. 아마도 그 순간만큼은  순수했던 고등학생 시절로 돌아갔으리라.


시장에 대한 추억이 많아서일까. 지금 사는 곳에도 자그마한 골목시장이 있는데 내 심부름으로 장을 보러 갈 때면 가까운 마트를 지나쳐서 일부로 그 멀리까지 간다. 그 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정겹고 사람 사는 냄새가 솔솔 풍긴다. 장을 다 보곤 홀로 군것질도 하고 아들이 좋아하는 떡집에서 파는 식혜랑 딸이 부탁한 떡볶이 1인분 곱게 포장해서 간다. 검은 봉지에 양손 가득 들면 세상 부럽잖다.


이번 주말엔 가족들 꼬셔서 순대국밥집을 가볼까나. 역시 순댓국은 시장에서 먹어야 제맛이다. 벌써 입안에 침이 가득 고이네. 안 되겠다. 다들 안되면 혼밥이라도 하러 가야겠.



한 줄 요약 : 시장 안엔 파는 온갖 것만큼이나 추억이 한가득하다





최근에 골목시장이 14년 만에 200여 곳이 문을 닫았다는 기사를 보곤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저라도 열심히 가야겠다는 다짐을 해보았네요. 부디 지역상권이 더는 사라지지 않길 바라봅니다.




#라라크루, #라라크루라이팅, #화요갑분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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