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크리에이션인데 강사가 내향인입니다
위기가 기회로 바뀌는 순간
우리는 자주 가는 00 시장 앞에서 만났다. 한눈에 보아도 둘 사이의 온도 차이는 극명했다. 범준이가 이제 막 떠오르는 태양 같다면 나는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해의 끝자락이었다.
"무슨 일이야. 얼굴이 왜 그리 상했냐?"
"말도 마. 편입이고 뭐고, 다 포기해야 할 판이다."
일단 답답한 마음에 소주 한잔을 들이켰다. 목구멍을 타고 알싸함이 온몸 가득 퍼졌다. 머리 고기를 한입 베어 물고 그 간의 사정을 폭포수처럼 쏟아 냈다. 범준이는 묵묵히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고개를 끄덕이고, 때론 표정까지 일그러지며 내 말 한마디 한마디에 집중했다.
든든한 지원군이 생겼다는 생각에 나를 옥죈 부담감이 스르륵 풀렸다. 내 안의 불안함은 여전히 존재했지만 술기운에 기대, 범준의 따뜻한 지지에 힘입어 잠시나마 망각할 수 있었다. 범준이는 특유의 낮고 굵은 목소리로 만난 지 30여분이 다 되어서야 입을 뗐다.
"실배야. 내 말 들어봐. 내가 아는 너는 그렇게 쉽게 포기하는 약한 사람이 아니야. 다만 친구로서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갑작스러운 상황이 닥치면 긴장을 많이 해서 대처가 부족하긴 해. 이렇게 해보는 것은 어떨까. 일단 프로그램을 짜고 반복 연습을 해보는 거야. 그걸 시연이라고 하지."
순간 암묵이 걷히고 한줄기 빛이 동그란 소주잔 안에 비추었다. 알코올이 서서히 뇌를 잠식해 가는 동안에도 입 안에서 '시연'이라는 계속 읊조렸다. 우리는 쉴 새 없이 잔을 부딪쳤고, 꿈에 관한 이야기로 밤늦도록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다음날부터 본격적으로 발표 준비에 돌입했다. 어차피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10분 남짓이었다. 많은 내용을 선보이기보다 임팩트 있는 서너 가지면 족하다 판단했다. 특히 사람들이 쉽게 따라 할 수 있고, 호응도 이끌어낼 수 있는 프로그램 위주로 구성했다. 완성본을 한글로 작성해서 조원들에게 메일로 보냈더니 모두 긍정적인 답이 왔다. 큰 틀 안에서는 내가 진행하지만 조원들이 참여해서 도와주어야 하는 부분이 있었다. 세세 역할까지 작성했다.
빈 강의실을 찾았다. 되도록이면 규모가 있는 곳을 골랐다. 아무도 없는 텅 빈 공간에서 홀로 시연을 시작했다. 타이머를 켜고 연습에 연습을 반복했다. 처음엔 시간을 넘기거나 짧게 끝나기 일쑤였는데 점점 시간의 아귀가 맞아떨어지기 시작했다. 하다 보니 이 부분에서는 이렇게 말하면 좋겠고, 저 부분에서는 저렇게 표현하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도 떠올랐다. 특히 신경 쓴 점은 유머였다. 이 지점에는 분명 웃음이 빵 터질 것 같다는 감이 왔다. 발표만 하면 방망이질 치던 심장도 호수가의 잔잔한 물결처럼 잦아들었다.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긴 뒤론 친한 친구 몇 명을 불렀다. 술을 산다는 말로 학교에 오도록 꼬신 뒤에 다짜고짜 강의실로 끌고 갔다. 그리곤 상황을 설명하고 앞에서 시연을 해보았다. 역시 혼자 할 때보다 사람들 앞에 있으니 훨씬 떨리고 예측할 수 없는 반응으로 당황하기도 했다. 반복되는 시연에 친구들 원성이 커질 때쯤 마무리하고 술집으로 향했다.
시간은 애석하게도 빠르게 지나갔다. 드디어 마지막 발표회가 돌아왔다. 강의실은 왠지 모를 긴장감이 돌았다. 이 한 번의 발표가 학점을 결정하니 그럴 수밖에. 첫날 세조의 발표가 끝이 났다. 앞선 조들의 발표를 보며 벤치마킹을 하려 했지만 긴장되서인지 내용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도 한 가지 깨달은 점은 소통이었다. 대형 강의실이다 보니 관객의 호응을 유도하기가 쉽지 않았다. 어지간 해선 모기 소리 만한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서로가 경쟁자이기에 냉정해지는 것은 당연했다. 긴장한 발표자의 모습에서 내가 비췄다.
한 주가 흘러 드디어 우리 조가 발표하는 날이 되었다. 첫 번째 조가 발표하는 순간에도 나는 계속해서 프로그램 내용을 웅얼거렸다.
“이제 5조 앞으로 나오세요.”
교수님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그때부터 손, 발, 얼굴에서 땀이 나기 시작했다. 몸은 사시나무 떨 듯 떨렸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조원들과 함께 강의실 천천히 강의실 앞으로 나갔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었음에도 하나의 동그란 빛처럼 느껴졌다.
간단히 자기소개를 마치고 조원들은 내 양 옆에 나란히 섰다. 선배들은 나를 믿는다는 마음을 눈빛으로 보여주었다. 머릿속으로 자기 암시를 시작했다. ‘나는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크게 한 호흡을 한 뒤 준비한 멘트를 시작했다.
“동남아 순회를 이제 막 마치고 여러분을 만나러 온 불꽃처럼 뜨거운 남자, 여러분을 웃겨줄 남자. 실배를 소개합니다. 이제 저와 신나게 웃을 준비가 되셨나요?”
멘트를 마치고 앞을 바라보니 앞자리 인상 좋은 여학생 2명이서 살짝 미소를 짓고 있었고, 뒷자리에서 조그만 웃음소리도 들렸다. 그 순간 뭔가 형용할 수 없는 찌릿함이 느껴지며 마법처럼 긴장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제가 지금부터 몇 가지 퀴즈를 내겠습니다. 상품은 정말 대단합니다. 정답을 아시는 분은 크게 정답을 외치고 손을 들어주세요. 자 시작합니다. 오이가 죽었을 때 묘비명은?”
이곳, 저곳에서 정답을 외쳐대기 시작했다. 몇 가지 난센스 퀴즈를 더 내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오답을 정답인 듯, 정답을 오답인 듯 헷갈리게 만들면서 쫄깃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오답입니다!"라면 탄성이, "정답이에요!"라면 환호가 쏟아졌다. 이제는 관객 하나하나의 얼굴이 또렷이 보였다. 교수님의 참여를 유도하기도 했고, 슬쩍 미모를 치켜세우기도 했다. 내내 냉랭했던 교수님 표정에도 순풍이 돌았다.
분위기를 내 것으로 가져오니 마치 베테랑 댄서처럼 무대 위를 춤추기 시작했다. 이어지는 건강박수, 단체 가위바위보 게임 등 준비한 발표를 무사히 마쳤다. 청중들의 큰 박수가 이어졌고 마음이 울컥했다. 나를 토닥였다. ‘그래, 잘했어. 실배야.’
몇 주 뒤 성적표가 집으로 왔다. 봉투를 열어보니 A+였다. 뛸 듯이 기뻤다. 내 생애에서 발표로 얻은 첫 성과였다. 한 번의 성공 경험이었지만 그 결과는 실로 어마어마했다. 타키투스의 명언 ‘용기가 있는 곳에 희망이 있다.’처럼. 이 날을 계기로 삶의 큰 변화를 가져왔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 또 다른 위기가 찾아왔으니 그건 바로 4학년 때 1학기에 나갔던 교생실습이었다.
한 줄 요약 : 반복적인 시연은 내향인도 강의할 수 있게 만든다.
이 글은 매거진에서 발행한 글을 퇴고했습니다.
#라라크루, #라라크루라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