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인의 반격 아니 박력

by 실배

편입시험은 범준이와 나 모두 실패했다. 하긴 공부보다는 둘이 어울려 다니며 술만 마셔댔으니 그럴만했다. 도원결의는 1년 만에 허무하게 해체되고 각자 군대로 향했다.


최전방에 배치되어 몸고생을 좀 했지만 2년 2개월의 시간은 해이해진 정신력을 다시 무장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재대 후 3학년으로 복학 준비를 하던 중 수강신청 때 교직과목을 이수해야 함을 깨달았다. 2학년 2학기때 교직 과목을 신청한 것이 기억났다. 어릴 때부터 자격증은 무조건 따고 보아야 된다는 어머니의 가르침이 뼛속 깊이 박혀 마음을 움직였다. 물론 1학년 때 망친 학점을 편입 준비한다며 2학년 때 많이 회복을 해놓아 가능한 일이었다. 하나를 잃으면 하나를 얻는 세상의 이치였다.


3학년 때 힘들게 교직 과목을 이수한 후 드디어 4학년 때 교생 실습을 나가게 되었다. 고민 끝에 모교인 00 중학교를 지원했고 다행히 가능하다는 답을 얻었다. 갈 곳을 구했다는 안도감도 잠시, 이제 곧 아이들 앞에서 수업을 해야 한다는 공포가 스멀스멀 밀려왔다.


우연히 함께 교생실습을 나온 동네 친구와 같은 반에 배정이 되었고, 그 친구는 체육, 나는 도덕 과목을 맡았다. 바로 수업에 투입되지는 않았고, 견습기간이 있었다. 담당 선생님의 수업을 뒤에서 참관하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계속 고민했지만 뾰족한 답은 없었다. 그분은 수십 년 수업만 할 달인이기에 어설프게 따라 할 순 없었다. 일단 선생님이 준 교재를 가지고 연구해 보기로 했다.


그 당시 같은 햇병아리 교생과 만나면 온통 이야기의 중심은 수업이었다. 점점 그 시간은 다가오는데 답은 없고 모두가 아닌 척 담담해보았지만 얼굴에선 불안함이 비췄다. 피한다고 피할 수도 없었고, 선생님이란 꿈도 없으면서 그저 자격증 하나를 취득하겠다는 욕망이 이끈 벌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금요일이었다.


"실배 선생. 이제 수업 한번 해볼 테야?"

"네? 아직.... 준비가...."

"준비는 그냥 하면 되는 거지. 다음 주부터 혼자 해보세요."


허거덕. 결국 때가 왔구나. 교생들 중 내가 가장 먼저 시작이었다. 그날 저녁은 회식을 했다. 다들 위로의 말을 건넸지만 괜찮았다. 나에게는 필살기가 있었다. 물론 그건 나만의 생각이었지만.


단정하게 양복을 차려입고 학교로 향했다. 종이치고 교실 문으로 향하는 나의 발걸음엔 비장함이 흘렀다. 귓가엔 실배스타스탤론 주연의 영화 로키의 주제가인 'Eye of Tiger'가 흘렀다. '쿵쾅' 떨리는 심장소리에 맞추어 교실 앞 문을 열었다.


나를 바라보는 수십 개의 눈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이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출석부를 열었다. 반장에게 인사를 시킨 후 한 명 한 명 출석을 불렀다. 그리곤 오늘 나갈 진도에 관해서 설명하고는 분필을 들고 칠판에 판서를 시작했다. 타고난 악필이라 평소 손글씨 쓰는 것을 극도로 꺼렸지만 최대한 한 자 한 자 정성스레 적었다. 쓰고 나니 계속 오른쪽으로 쏠렸지만 그래도 생각보다는 봐줄 만한 판서였다. 아마도 태어나 가장 글씨를 잘 쓴 순간이 아닐까.


아이들은 이젠. 뭘 할지 호기심 섞인 눈으로 계속 바라보았다. 천천히 입을 떼고 말을 시작했는데 그건 평범한 소리가 아니었으니 바로 고성과 가까운 울림이었다. 내가 찾은 필살기는 바로 '박력'이었다. 내향인임을 감추고 먼저 제압하겠단 단오한 의지였다. 말도 안 되는 황당함 그 자체였는데 아니 이게 먹히는 것이 아닌가. 맨 뒤에 잔뜩 눈이 풀려 꾸벅거리던 아이도 목소리에 놀라 깨더니 그 뒤론 아무도 졸지 않았다. 아마도 시끄러워 잘 수 조차 없었으리라. 50분의 시간을 그저 소리치다 끝이 난듯했다. 이마에 땀이 한줄기 흘렀고, 몸은 벌써 쉰 듯 칼칼했다.


수업을 마치고 교생 실습실로 향하는데 어떤 선생님일 불러 세웠다.


"아니 교생 선생님이 옆반에서 수업한고요?"

"아... 넵..."

"어찌나 시끄럽던지 난 또 아이들이 떠드는 줄 알았네. 그래도 젊은 사람이 박력 있구먼 허허. 그래도 조금만 소리를 좀 낮추면서 수업하시게."

"넵. 유의하겠습니다."


나의 수업은 선생님들 사이에 자그마한 화제가 되었다. 물론 수업이라 말할 수 없는 고래고래였지만 젊은이의 패기로 좋게 봐주신 듯했다. 아이들도 하나의 신선한 퍼포먼스로 느끼며 재밌게 받아들였다. 지금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지만 나로선 살기 위한 발버둥이었다. 수업이 진행될수록 나의 목소리는 전보단 작아졌고(여전히 평균 이상이었지만), 그 속엔 점점 알맹이를 채워갔다.


한 달간의 교생 실습은 참 나에게 많은 것을 주었다. 마냥 수줍고 설익은 사과 같던 내가 스스로 도전해 보고 내향인의 한계를 깨 보는 계기가 되었다. 짧은 시간 참 많은 추억도 있었다. 함께 했던 교생선생님들과 죽이 잘 맞아 학교 끝나고 자주 어울리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고, 반 아이들과는 무척 가까워져 내 생일날 서프라이즈 파티와 학생들 모두 롤링페이퍼를 작성해 주어 감동의 눈물을 찔끔 흘리기도 했다.


올 초에 우연히 인스타그램 디엠으로 그 당시 우리 반이었던 남학생이 연락이 와서 직접 만났다. 그때는 마냥 어리게만 보았던 제자가 이제는 30대 중반이 다 되었다. 심지어 지역은 달랐지만 같은 회사의 후배였다. 동네에서 만나 함께 소주잔을 기울이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중,


"선생님. 근데, 수업 때 목소리 정말 컸어요. 제가 인스타에서 선생님 발견하곤 가장 먼저 목소리가 떠올랐거든요."


살짝 부끄럽기도 했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 강렬한 인상으로 남았으니 반은 성공한 것으로 자위한다.


이제 본격적인 강의의 서막 열렸으니, 그건 바로 취업 후 직장에 들어가면서부터였다.




한 줄 요약 :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반드시 있고, 무모한 도전일지라도 시도해야 실패든 성공이든 알 수 있다.





#라라크루, #라라크루라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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