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인 강사의 필수조건, '무기가 많을 것'
시연과 더불어 사례란 무기를 획득하다
어느덧 대학 4학년, 남들은 취업 준비로 아등바등할 때 난 홀로 도서관에서 대학원 준비를 했다. 실배 넌 상담이 어울린다는 선배의 지나간 한마디는 마음에 커다란 구멍을 만들었고, 그걸 채우려 1년의 시간을 고스란히 갈아 넣었다. 1시간 반이나 걸리는 거리임에도 청강까지 하며 목표를 향해 정진했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합격했다.
2년간의 대학원 생활을 마치고 첫 취업은 청소년상담센터였다. 이제 상담사로서 날개를 필 거란 기대와 달리 현실은 과중한 행정일로 허덕였다. 센터의 정체성이 '학교폭력 피해 전문 상담실'이어서 주로 피해 아동과 청소년 중심으로 상담과 캠프가 주된 업무였는데, 거기에 한 가지 중요한 일이 더해졌으니 바로 학교에서 의뢰온 학교폭력예방 출장 강의였다.
고작 직원이 3명뿐인 작은 상담실에서 팀장을 제외한 나머지 2명의 팀원은 상담, 행정, 강의, 유급강사 관리 등등 만능이 되어야 했다. 컴퓨터에 있는 강의안 하나를 가지고 강의를 나서야 했다. 하필 첫 강의부터 중학생 전교생을 강당에 모아놓고 진행하는 대단위 강의였다. 자칫 산만하기 쉬운 수많은 아이들의 눈을 사로잡을 강력한 한방이 있어야 했는데, 나의 판단으론 영상과 사례였다. 여러 가지 중 마음을 흔들 수 있는 것을 골랐고, 다음은 사례였다. 흩어진 이야기를 모아 기승전결이 있는 하나로 엮었다.
단순히 내용 전달만이 아닌 그 안에 진심을 담았다. 혼자 사무실에 남아 배우가 대본을 외우 듯 반복했다. 피해 상담을 진행하면서 학교폭력이 한 사람 자체를 해체하고 무너져버리게 만든다는 것을 너무 잘 알기에 강의를 듣고 단 한 명이라고 심각성을 깨닫길 바람이었다.
강의가 시작되고, 예상대로 학생들은 무척 산만했다. 특히 개념 설명 부분에서는 웅성거리는 소리에 내 말은 묻혔고, 어떻게 해야 하나 당황스러울 때쯤 비장의 카드인 영상을 틀었다. 영상의 효과는 탁월했다. 점점 빠져들어가는 모습을 보였고, 그 시끄럽던 소리는 온데간데없었다. 이때를 놓칠세라 영상과 이어지는 사례 이야기로 분위기를 이어갔다. 기존에 준비했던 내용에 나의 서사가 더해져 의도했던 대로 그 한마디 한마디에 아이들의 표정은 시시각각 변했다. 어느새 장내는 개미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정도로 고요했다.
개인정보를 제외한 직접 상담했던 피해 아이의 실제 외침을 전하며 마무리했다. 뜨거운 박수와 함께 1시간여의 강의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 짧은 시간이 얼마나 그들 마음에 남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자그마한 울림 정도는 준 듯해서 오는 길에 벅차오르는 감정을 주체 못 했다.
강의로서도 한 가지 수확은 '사례'의 강력한 힘을 깨달았단 점이다. 반복적인 시연과 더불어 나 만의 사례를 만드는 능력은 타고난 내향인으로서 극복할 수 있는 무기였다. 그건 내가 상담실에서 경험을 쌓을수록 더욱 강화되었다. 사례는 점점 더 풍성해졌고, 상황에 따라 꺼낼 카드 또한 많아졌다. 때로는 이론을 줄이고, 사례만으로 전체 강의를 끌어갈 정도가 되었다. 반응이 괜찮았는지 한번 이어지 학교는 계속해서 의뢰를 했고, 전체 의뢰 횟수 또한 늘어났다. 부수적 업무였던 강의가 많아진 건 내 일이 그만큼 늘었단 뜻이기도 했지만 나를 갈고닦을 기회가 되었다.
학교에 학교폭력예방 강의를 나가면서 세 가지 강의 패턴이 자리 잡았다. 처음 나갔던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강당에서 집합하는 강의, 방송실에서 강의를 하고 화면을 각 교실에 송출하는 시청각 강의, 반 단위로 이루어져 교실마다 들어가서 강의를 하는 학급 강의였다.
개인적으로 학급 강의가 가장 효과가 있었다. 시청각 강의는 강사 입장에서는 편했지만, 학생들이 강의를 듣고 있는지 확인할 수 없고, 무엇보다 소통할 수 없다는 가장 큰 단점이 있었다. 그래서 나 같은 경우는 학생 몇 명이라도 방송실에서 강의를 듣도록 요청했다. 그런 의미로 학급단위 강의는 내가 상황을 통제할 수 있을 만큼의 학생수와 더불어 눈을 맞추고, 질문과 답을 하고, 때론 반응을 살피며 시의 적절한 카드를 꺼낼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학급단위 교육에서는 초기에 OX퀴즈 등으로 시선을 집중시키고, 모둠별 토론 등 좀 더 다양한 형태의 교육이 가능했다.
어느 정도 틀이 잡혔다 싶을 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수준별로 강의 교재를 구성하고 그에 맞는 사례를 갖추면서 언제, 어디서 강의 의뢰가 와도 즉각 나갈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했다. '강의'만 떠올리면 불안, 초조가 따라왔던 내가 조금씩 자신감도 생기고, 전보다는 훨씬 편한 마음으로 나섰다. 물론 시작 전에 몹시 쿵쾅거리는 심장은 어쩔 수 없지만.
첫 직장은 2년 정도 근무하고 그만두었다. 여기서 다 말할 순 없지만 고학력 저임금(여전히)뿐 아니라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상담계에서 결혼까지 앞둔 남자 상담자로서 계속 버티기 쉽지 않았다. 그때 마침 학교 상담교사를 대거 뽑는 정책이 시행되었고, 교직 자격증이 있는 덕에 짧은 과정만 이수하고 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취득했다. 자격증은 언제라도 써먹을 기회가 있다는 어머님의 가르침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인생이 어디 내 마음처럼 흘러가더냐. 그 시기에 어떤 사건 하나가 터졌고, 과락만 면하면 합격한다는 장밋빛 전망도 대폭 인원이 다른 분야로 바뀌면서 실패의 쓰디쓴 잔을 마셨다. 다음 해에 한번 더 도전을 앞둔 시점에 우연히 다른 부처의 경력 경쟁 채용 공고를 보았고 임용보단 훨씬 수월한 경쟁률로 공직에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이제는 피해가 아닌 가해 청소년을 교정 교화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사람 일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다더니. 이렇게 나의 강의 인생도 마무리 되니 싶을 때쯤 기관 내 새로 신설된 '비행예방센터'란 곳에 발령 났고 초기 단계의 비행청소년을 교육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되었다.
뜻하지 못한 곳에서의 근무는 그렇게 끝이 날 듯한 강의의 도화선에 거대한 불을 붙였다. 그 시작은 전국에 흩어져있는 20여 곳의 센터가 한날한시에 모여 개발한 비행예방프로그램을 발표하고 순위가 정해져 기관 평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고도화 프로그램 경진대회'였으니....
한 줄 요약 : 한 치 앞도 예측 못하는 인생이라지만 미리 준비한 자만이 찾아온 기회를 쟁취한다
#라라크루, #라라크루라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