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산타할아버지가 진짜 없어?
아이의 동심을 섣불리 파괴한 나쁜 엄빠
크리스마스가 하루 지난날, 퇴근 후 가족들과 식사를 했다. 옆자리에서 밥을 먹고 있던 딸이 갑자기 심각한 표정을 짓더니 물었다.
"아빠, 산타할아버지 진짜 없는 거지?"
"응?"
"빨리 말해봐."
"아니. 뭐.... 그렇지."
이런 큰일 났다. 이제 와서 산타할아버지의 존재를 다시 묻다니. 아내와 나는 이제 6학년이 되는 딸에게 더는 산타 부모가 되지 않기로 결정했다. 언뜻 산타할아버지가 없다는 눈치를 우리에게 비추곤 했고, 기호가 워낙 확실한지라 그간 주었던 선물을 썩 마음에 들지 않기도 했다.
차라리 아이에게 솔직히 고백하고 대신 원하는 선물을 사주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아내가 딸과 독대해서 산타할아버지가 없음을 밝혔고, 받고 싶은 선물을 물었더니 후드티를 선택했다. 딸은 나와 아내 모두에게 선물을 받기로 했다. 이때만 해도 쿨하게 받아들였다. 마치 언제 말하나 기다렸다는 듯이.
쇼핑을 가서 옷을 고르며 보름달보다 환한 미소를 보고는 '그래 잘했어.'라고 안위했다. 사실 초등학교를 마칠 때까지는 산타할아버지의 존재를 계속 유지하려 했지만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문제는 크리스마스 당일에 벌어졌다. 집에서 유일한 아침형 인간인 나는 그날도 일찍 거실 테이블에 앉아 커핀 한잔을 음미하여 책을 읽고 있었다. 그때였다. '드르륵' 문이 열리더니 딸이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아래를 살피는 것이 아닌가. 그 지점은 우리가 매년 선물을 놓던 곳이었다. 스치듯 실망한 표정이 보였고, 그대로 문은 굳게 닫혔다.
딸은 종일 초조한 모습이 보였다. 아뿔싸. 그제야 깨달았다. 딸은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는 산타할아버지의 존재를 믿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그날 내내 '혹시나'란 얼굴을 하며 방 주변을 어슬렁 내는 아이를 보며 복잡한 심경을 감출 수 없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다시 담을 수 없고 이제 와서 산타할아버지가 다시 있다고 한 들 무슨 소용 있으랴. 나 역시 초등학교 6학년 무렵 어머니가 산타할아버지 선물을 문 앞, 빨간 양말 속에 넣는 모습을 우연히 목격하곤 몹시 충격받고 한동안 멍하게 지냈던 기억이 있다. 차라리 나중에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편이 더 나았으려나? 왠지 섣부른 선택을 한 것 같아 딸에게 미안했다.
식사를 마칠 무렵 나는 슬며시 말을 꺼냈다.
"딸, 그래도 산타할아버지가 있다고 믿으면 진짜 있지 않을까?"
"에이. 설마."
"그래도...."
이젠 아내와 설레는 마음으로 아이들 선물 사고, 옷장 깊숙이 숨겨 놓았다가 잠이 든 다음 몰래 빨간 양말 속에 넣었던 일은 모두 추억 저편으로 사라졌다. 그때는 발도 동동거리고, 분주하고 그랬는데 막상 자유롭고 보니 허전함을 감출 수 없네.
딸아, 너의 동심을 파괴한 아빠, 엄마를 용서해주렴. 그래도 앞으론 네가 원하는 선물을 가질 수 있으니 그걸로 만족하고 이해해 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