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실배 Apr 03. 2024

 아들아, 목포에 가고 싶구나

부모님을 모시고 떠난 1박 2일간의 목포여행

작년 이맘때쯤이었다. 아버지가 목포에 가고 싶다고 했다. 기차표까지 모두 예매하였다가 코로나로 인하여 결국 취소하게 되었다. 그리고 올해 불쑥 '목포'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행동형 인간이기에 바로 아버지께 연락을 드렸고, 3월 말로 덜컥 약속을 잡았다. 솔직히 마음 한편엔 지나고 후회하지 말자는 다짐도 있었다.


아내에게 양해를 구하고, 회사 연차도 하루 냈다. 나 홀로 연로한 부모님을 모시고 그 먼 목포까지 다녀와야 하기에 철저한 계획이 필요했다. 하나씩 차근히 준비했다. 먼저 기차표를 예매하고, 숙소를 정하고 먹거리와 볼거리를 찾았다. 다행히 회사 동료 중에 목포 출신이 있어서 커피를 사주며 도움을 받았다.


문서로 일정표를 짰다. 그 안엔 부모님이 꼭 드시고 싶거나 보고 싶다는 의견을 꼭 담았다.


드디어 당일, 아침 일찍 부모님을 모시고 용산 KTX로 향했다. 간단히 점심을 먹고 기차를 탔다. 두 분 모두 감기에 걸렸고, 특히 어머니가 심했다. 기침을 계속하는 모습에 걱정이 되었다. "괜찮다."라고 안심시키는 말이 실제 괜찮지 않음을 알기에. 내려가는 길에 내내 나의 시선은 옆에 있는 부모님께로 향했다.

거의 세 시간이 걸려서 목포에 도착했다. 목포 날씨는 춥지도 덥지도 않았다. 다만 대기질은 좋지 못했다. 잠시 부모님을 역에 두고, 예약한 렌터카를 찾아왔다. 첫 출발지는 해안도로 탐방이었다. 눈으로만 담다가 길가에 잠시 차를 대고 해변가 산책을 했다. 비릿한 바다 내음에도 두 분 얼굴엔 목련 꽃이 활짝 피었다.

저녁 식사 전 어머니가 전부터 노래를 했던 쑥굴레집을 방문했다. 직접 가보니 소박한 분식점이었다. 줄을 많이 서서 기다린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다행히 브레이크 타임이 끝나는 시간이라 바로 살 수 있었다. 한 개에 6천 원인데 두 개씩 묶어서 팔았다. 모양은 꿀떡 비슷해서 맛이 궁금했다.

저녁식당은 낙지탕탕이로 유명한 '독천식당'이었다. 메뉴는 낙지탕탕이와 연포탕을 시켰다. 종업원분이 오셔서 전에는 육회도 섞어 주었는데 이제는 없어졌다고 해서 아쉬웠다. 맛은 쫄깃하고 고소하니 별미였다. 연포탕도 자극적이지 않으며 속풀이에 딱이었다.

숙소는 평화분수가 있는 바다뷰 샹그리아비치호텔이었다. 처음 호텔방에 갔을 때 느낌은 평온함이었다. 창 밖에 바다가 보이며 내부시설도 정갈했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평화분수 주변을 걸으며 저녁 벚꽃을 감상하고 갓바위까지 보러 갔다. 갓조명을 쐐서 영롱하면서 신비로웠다. 자연적인 풍화작용으로 인해 형성되었다는데  어떻게 이런 모습이 되었을까. 다정한 두 분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돌아와서 쑥글레를 먹었다. 쑥떡에 녹두맛 앙금을 묻혀 조청을 찍어 먹는데 처음 먹어본 맛이었다. 입이 짧은 어머니도 몇 개나 집어 드셨다. 남은 시간은 함께 TV를 보며 옛날 추억을 하나씩 꺼내 보았다.


다음날 일찍 일어나 아버지와 인근 해장국집에서 아침을 했다. 그 시간이 무려 새벽 7시였다는. 역시 지독한 아침형 인간인 부자였다. 저녁형 인간인 어머니를 위해선 간단한 주전부리를 챙겼다.


첫 일정은 목포 해양케이블이었다. 사전에 알아보니 북항 승강장은 줄을 많이 선다고 해서 차로 30분 거리의 고하도 승강장으로 갔다. 오전 10시쯤 도착했는데 다행히 사람이 많지 않았다. 밑바닥이 투명한 크리스털캐빈은 무서울 것 같아 일반으로 선택했다. 거친 바람에 몹시 흔들려 초반엔 무서웠다. 그래도 안정을 찾고 주변 풍경에 빠져들었다. 고하도 승강장의 장점은 중간에 유달산에 내릴 수 있다는 점이다. 원래는 정상까지 가보려 했으나 어머니가 힘들다 하여 인근 정자까지만 걸어가 한눈에 들어오는 목포 시내를 구경했다.

북항 승강장은 역시 사람들로 붐볐다. 30여분 정도 줄을 섰다가 돌아오는 케이블카에 탑승했다. 한결 마음이 편해져 주변이 또렷이 보였다.


점심은 푸짐한 반찬으로 유명한 백반집인 초원의 집과 민어회로 유명한 영란횟집 중 고민하다가 아버지가 후자를 선택했다. 민어회는 아버지의 최애 음식이기도 했다. 민어회와 매운탕을 시켰다. 서비스로 부레와 껍질을 주어 기름장에 찍어 먹었다. 드디어 민어회가 나왔다. 두툼하고 담백한 살을 쌈채소와 쑥갓에 쌓아 이곳만의 특제 소스에 찍어 먹으니 행복이 절로 찾아왔다. 요즘 입맛이 없다며 식사를 잘 못했던 아버지도 젓가락질을 멈추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초장소스가 막걸리 식초로 만들었단다. 어쩐지 톡 쏘는 맛이 일품이었다.

매운탕은 냄비에 담겨왔는데, 보기에도 걸쭉하니 보양 느낌이 폴폴 났다. 건더기도 많고 차만 아니면 소주 한잔을 곁들이면 최고의 안주가 될 듯했다.


식사를 마치고, 근현대사박물관으로 향했다. 횟집에서 그리 멀지 않아서 도보로 이동했다. 부모님은 무료입장이라 내 표만 끊고 안으로 들어갔다. 목포의 아픈 과거가 담겨있어 그 자체로 숙연해졌다. 천천히 걸으며 하나하나 꼼꼼히 눈에 담았다. 특히 일제강점기에 지역을 나누어 우리 민족은 물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살기 힘든 곳에 몰아넣고, 일본인은 좋은 곳에서 생활했다는 기록에 분노와 슬픔이 찾아왔다. 부모님도 관심 있게 관람을 했다.

관람을 마치고 인근에 있는 롬방제과에 가서 유명한 새우바게트 등 빵을 샀다. 안에서 잠시 쉬면서 차도 마시며 더위를 식혔다. 목포는 이날 온도가 20도까지 올라갔다. 두 분이 많이 지쳐보았다. 많은 곳을 보여 드리고픈 마음에 너무 무리를 한 것은 아닌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머니가 지인분께 쑥굴레를 선물하고 싶다고 해서 몇 개를 사 왔다.


이제 모든 일정이 끝났다. 목포역 근처로 가서 렌터카를 반납하고 열차에 탑승했다.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그대로 골아떨어졌다. 의식은 안 했지만 내내 신경을 많이 썼나 보다. 저녁이 다 되어 도착했다. 부모님을 모셔 드리고, 집에 오니 아버지와 어머니가 연달아 연락이 왔다. 격한 이모티콘까지 쓰며 행복했다는데 피로가 모두 사라졌다.

씻고 침대에 누워 다녀오길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지나고 떠올리면 미소가 절로 나오는 추억 하나를 남겼네.


       



매거진의 이전글 결혼기념일에 자기 뺨을 때리고 싶다는 아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