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내와 결혼 17주년 기념일이다. 며칠 전 둘만의 근사한 저녁을 기대하며 전망 좋은 뷔페를 알아보고 카톡을 보냈더니, 아이들도 같이 하면 좋겠다고 해서 물어보라고 했다. 설마 했는데 웬일인지 둘 모두 같이 가겠단다. 아이들은 뷔페를 좋아하지 않아서 급하게 메뉴를 대겟집으로 변경했다.
도서관 봉사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안양천 산책을 제안했건만 집돌이, 집순이들은 당최 몸이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아내와 둘이 내 셔츠를 사러 백화점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17년이란 세월에 감명받아 아내에게 그 소회를 전했다.
"여보, 우리가 벌써 결혼 17주년이나 되었다니. 시간 정말 순간이다. 기억나? 20주년에 신혼여행지 다시 가보기로 했는데 이제 3년밖에 남지 않았네. 신혼여행 때 정말 좋았는데."
"그랬나. 난 기억도 안 나. 타임머신이 있다면 17년 전으로 돌아가 나에게 정신 차리라고 뺨을 막 때려줄 텐데 말이야."
허공에 뺨을 때리는 모습에서 살기가 느껴졌다. 이 순간을 모면하고자 얼른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마음에 드는 옷이 있어 샀다. 아내도 골라보라는 나의 말에, 지금은 때가 아니라며 필요한 시기에 카톡으로 보내준다고 했다. 어떤 대단한 거길래. 등줄기가 오싹했다.
아이들과 만나기로 한 장소로 향했다. 저 멀리 둘째가 예쁜 꽃을 들고 나타났다. 아까 집에 있을 때 나와 아내 주변을 돌며 어떤 꽃을 좋아하냐고 묻더니 깜짝 선물을 준비했다. 오빠와 상의해서 골랐다니 대견했다. 벌써 이렇게나 커서 엄마, 아빠 결혼기념일도 챙길 줄 알았다.
음식점에 도착해서 홍게 세트 메뉴를 시켰다. 반찬 가짓수도 많았고, 이미 정리해서 나온 게살도 먹음직했다. 추가로 대게라면과 볶음밥도 2인분도 주문했다. 양이 너무 많은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무색하게 깨끗하게 싹싹 비웠다. 역시 뭐든지 잘 먹는 우리 가족이다.
집에 돌아와 잠시 쉬고 있으니, 딸이 나와 아내를 안방으로 내몰았다. 조금 있다 나오라고 해서 부를 때 가보니 식탁에 케이크를 준비해 놓았다. 두 번째 서프라이즈였다. 어떻게 불러야 할 하나 고민하다가 생일 축하 노래에 맞추어 기념일로 개사했다. 카드까지 준비해서 읽어보았더니 잘 키워주어 고맙단 글 사이에 싸우지 말고 행복하게 잘 지내란 문구가 눈에 확 띄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그래도 아이들이 신경 써준 덕분에 행복한 기념일을 보냈다. 아이들은 방으로 사라지고. 아내에게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