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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Nov 24. 2019

넌 베놈, 난 블랙 팬서

 “너무 높아! 너무 높아!”


 하얀 두건을 쓴 괴상한 생명체를 자전거에 태운 꼬마가 거대한 달과 포개지면서 외친 그 장면. 옆에 앉은 아버지 손을 꽉 잡고 콩닥거리는 심장을 주체 못 했던 나의 첫 극장 영화 ‘ET’
그때부터 영화는 스펀지 물 먹듯 나의 삶에 스며들었다.
 다행히 나의 영화사랑 DNA는 아들에게 잘 전달되었다. 둘이 가장 신나는 시간은 영화 이야기할 때이다.


“아빠. 아빠는 어떤 초능력을 갖고 싶어?”
“난 스파이더맨 거미줄. 출근할 때 벽 타고 빨리 가게. 히히. 넌?"  
"음. 토르 망치. 숙제 다 부숴 버리게. 숙제 완전 짜증 나."


둘이 요렇게 영화 바다에 흠뻑 빠진다.

 2017년 겨울, 2018년도 버킷리스트 작성 중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아들과 슈퍼히어로 영화 다보기.' 아들도 당근 콜! 둘이서 즉각 네이버 검색하니 마블 영화가 8편 정도 나왔다. 한국 히어로 물과 DC영화도 몇 편 합치니깐 총 16편. 오케이 못 먹어도 고!


영화 보고 오는 날이면, 둘 다 흥분하여 이불 위에서 뒹굴고, 씨름하고 한바탕 난리가 났다. 두 개의 심장이 하나 되어 세차게 뛴다. 같은 것을 보고 느끼고.

며칠 전 침대에 누워 아들에게 물었다.


"아들. 올해 본 최고의 영화는?"
"베놈. 15세 관람가인데 하나도 잔인하지 않고, 외계 생명체 심비오트가 멋졌어. 아빠는?"
"나는 블랙 팬서. 검은 갑옷이 끝내 주었고, 왕국을 지키려고 목숨 바쳐 싸우는 모습이 최고였어."

올해의 끝자락. 이제 거미 가면 쓰고 신나게 빌딩 숲을 날아다닐 일만 남았다.

 2018 버킷 리스트, '아들과 슈퍼히어로 영화 다 보기.'

미션 클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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