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책'에서 진행하는 문학 독서 모임 참여를 위해서 책을 읽었다. 제목이 '이별 없는 세대'인 단편 모음집이었다. 애틋한 사랑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첫 장을 넘기면서 다가오는 묘사의 향연, 난해한 형용 어구들이 내 눈을 흐트러트렸다. 아. 어렵다. 그렇게 그와의 첫 만남은 체 몇 장을 넘기지도 못하고 그만 접어 버렸다.
어느덧 독서 모임 날이 기차 종착역에 다가가고 있었다. 나의 마음도 분주해졌다. 그래서 다시 그와 두 번째 만남을 시작했다. 읽다 보니 조금씩 글이 들어왔다. '쥐들도 밤에는 잠을 잔다.' 편을 읽은 순간. 글뿐 아니라 그의 마음이 나에게 들어왔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집안에서 생사도 모르는 어린 동생을 지키는 아이. 혹여나 쥐가 동생 시체라도 파먹을까 봐 잠도 못 자고 보초를 서는 그 아이. 지나가다 그 아이의 사연을 듣고 쥐도 밤에는 잠을 잔다고 안심시키는 어느 사내. 바닥에 앉아 구부러진 그의 다리 사이로 비취는 노을을 바라보며 희망을 품는 아이. 슬프다. 고통스럽다. 그 말 한마디 없이도 그와의 만남 내내 그 어느 때보다 슬픔이 내 폐부를 찔렀다.
글을 써야만 사는 천재가 있다. 그런 그가 19살의 어린 나이에 참혹한 전쟁을 만났다. 그는 혼자만의 또 다른 전쟁을 치른 것은 아닌가. 글과의 전쟁 말이다. 여기저기 널브러진 시체. 이별 없이 사라지는 동료. 다가오는 죽음. 어느 하나 그의 감성을 북돋을 소재는 없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그 조차 글감으로 만들어 글을 썼다. 앞도 뒤도 구별할 수도 없는 짙은 어둠 속에 쿵 하고 닫힌 감옥 문. 빛도 없이 맨손에 맨 몸. 그러나 그는 검은 바닥 한 구석에 핀 민들레를 기어코 찾아 글을 썼다.
26살의 요절한 젊은 천재는 그가 남긴 가로등이란 시에서 그가 글 쓰는 이유를 설명한 듯하다. 죽어서라도 어느 선술집에서 서있는 가로등이라도 되고 싶은. 아이들이 재잘대는 어느 집 앞 가로등이라도 되고 싶은. 그렇게 사그라드는 순간에 어느 조그만 존재라도 되고픈. 글로서 존재하고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