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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람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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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Nov 16. 2019

가을 닮은 사람

비가 많이 온다. 이제 가을 내 물들었던 나뭇잎은 모두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겠지. 겨울이 오는 신호이다. 계절도 쉼이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봄이 지나면 으레 여름이 찾아오고, 좋아하는 가을을 즐기면 어느새 겨울이었다. 겨울은 모든 것이 멈추는 시기이다. 1년 내내 바쁘게 돌아간다면 자연도 탈이 날 것이다.

지금 내 삶은 사계절의 어디쯤 와 있을까. 어릴 땐 여름을 닮고 싶었다. 닿으면 델 것 같이 뜨거웠다.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열정 가득한 시기는 언제였나 싶을 정도로 기억에도 가물가물해졌다. 이제는 가을이면 어떨까 싶다. 쾌청한 하늘처럼 맑은 사람이고 싶고 선선히 불어오는 바람처럼 여유롭고 싶다. 가끔 가을 냄새가 나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이유 없이 그 사람에게 끌린다. 어떤 삶이 그 사람에게 가을 옷을 입혔을까. 나도 옆에 꼭 붙어있으면 조금은 닮을 수 있을까.

사실 나는 겨울을 살고 있다. 하루를 차디찬 공기 속에 갇혀있다. 수시로 내리는 눈과 추위 속에 몸이 움추러든다. 일주일의 계절이 있다면 겨울과 봄만 존재한다. 긴 주중의 겨울을 거쳐 주말에 잠시 봄을 맛본다. 어찌나 달콤한지 영원히 그 안에 머물고 싶어 진다. 야속하게도 나의 계절은 어김없이 여름, 가을을 건너뛰고 겨울로 인도한다.

그런데도. 그런데도 나는 가을을 꿈꾼다. 언젠가 가을을 전하고 싶다. 내면의 단풍이 곱게 물들어 보는 것만으로도 그 정취가 물씬 풍기는 가을 말이다.

한 계절이 영원할 순 없다. 나의 겨울도 조금씩 다른 계절로 이동하고 있다. 그 계절의 끝은 가을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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