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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Nov 25. 2019

양자 물리학은 진짜였다.

일요일 드디어 인천에 있는 우드 슬랩 매장을 갔다. 지난주 딸에게 갑자기 찾아온 독감으로 일정이 한 주 미뤄졌다. 원래는 용인에 있는 매장을 가려고 했는데 인타넷 검색 끝에 가까운 인천에도 매장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토요일까지 포근했던 날씨는 갑자기 비도 오고 쌀쌀해졌다. 비로 인해 그간 굳세게 버텼던 나뭇잎은 우수수 바닥으로 떨어지며 그 생명을 다했다. 이제 정말 가을은 끝나려나보다.

30여분을 차로 달린 끝에 도착했다. 매장은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곳곳에 다양한 우드 슬랩 테이블이 전시되어 있었다. 신세계였다.


우리가 원한 사이즈는 길이 2,000에 넓이는 800 정도였다. 대략  그 정도면 소파를 없애고 적당할 것 같다. 나무 옆 면에 사이즈와 가격이 적혀있었다. 나무는 월넛과 레인트리가 대부분이었는데 가격은 레인트리가 좀 더 저렴했다. 아내는 심플한 것을 좋아한다. 화려한 무늬보다는 모던한 스타일을 골랐다. 그 수많은 테이블 중에 단 하나가 마음에 들어왔다. 마치 결혼할 사람을 한눈에 알아보듯 단번에 이거다라는 필이 왔다. 중간에 물이 지나간 듯 자연 그대로의 굴곡이 있고 은은한 달빛 같은 자태였다. 볼수록 매력 있었다. 아내와 아이들을 불러 물어보았더니 모두 좋다고 했다. 특히 아내도 마음에 쏙 들어했다. 나무 종류는 레인트리였고 길이는 2,100에 넓이는 840이었다. 결정하고 나니 사고 싶어 졌다. 지름신이 후딱 찾아왔다.

인터넷에서 미리 보았던 사장님은 옆에서 얼마나 말씀을 잘하시던지 귀가 얇은 우리는 그가 친 어망을 벗어날 수 없었다. 원래는 벤치를 살 생각이 없었다. 보기에만 좋지 실용성이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옆에서 가격을 깎아주겠다며 우리를 유혹했다. 옆에 직원은 전시된 벤치에 직접 앉아 보라며 협공을 시작했다. 계약서에 사인을 하는 순간까지 흔들렸다. 결국 벤치까지 사고 말았다. 그래. 손님이라도 오면 쓸데가 있겠지. 마지막 고가의 의자를 사라는 공격은 간신히 피했다. 아내가 인테리어를 하는 친구에게 소개받은 사이트가 있다고 했다.

우리는 뭐에 씐 것 마냥 우드 슬랩 테이블을 사고 말았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업되어 독서 모임 날짜도 테이블이 오는 다음 주로 연기했다. 온 가족이 모여 앉아 독서 모임 할 생각만으로도 짜릿했다. 아내는 바닥에 까는 러그도 사야 하고 멋들어진 조명도 필요하다고 했다. 나는 노트북 받침대를 사고 싶었다. 참 블루투스 스피커도 놓아야겠다. 재즈 음악을 들으며 커피 한잔해도 좋을 것 같다.

이제 정말 글도 쓰고 책도 읽을 진짜 공간이 생겼다. 급기야 아내와 나는 주변 지인을 불러 송년회까지 하자고 했다. 코스트코에 가서 살 메뉴까지 정했다. 온다는 사람도 없는데 둘이서 신나게 김칫국부터 마셨다. 요즘 내내 투탁거렸는데 그 순간만은 잠시 휴전이었다.

통 크게 저지른 덕분에 당분간은 초긴축재정이다. 하지만 돈으로 바꿀 수 없는 환경을 만들었다. 아이들과 함께 책도 보고 공부도 함께 한다면 그 이상 좋을 것도 없을 것 같다. 이제 다음 주 금요일이면 그간 상상했던 꿈이 이루어진다.

양자물리학의 법칙은 진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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