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곤 나 역시 핸드폰에서 메모장을 켰다. 예전엔 직접 종이에 적었는데, 시간이 지나면 구겨지고 낡아져서 재작년부턴 메모장에 기록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직접 돌아가면서 작년에 기록한 내용과 실제 달성한 걸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지만 아이들이 스스로 확인하자는 의견을 제안하고 받아들여 각자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물론 이룬 내용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것도 많았다. 하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이렇게 기록했기에 정신없이 흘러가는 중에도 한번 더 신경 쓰게 되었고, 삶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매년 12월 31일이 되면 우리 가족은 모두 모여 버킷리스트를 작성한다. 벌써 그 시간이 5년이 지났다. 다른 건 몰라도 이 약속은 꾸준히 지켜가고 있다. 해마다 비슷한 내용도 있고, 새롭게 추가되거나 빠진 내용이 있기 마련이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내용을 보는 재미가 있다. 버킷리스트는 소망이기에 평소 어떤 꿈을 꾸고, 어떤 바람이 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까운 건 사춘기 구간을 지나가고 있는 아이들이 더는 내용을 공유하는 점이다. 하긴 이렇게 함께 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겠지.
기록의 힘은 위대하다. 아직 한 해가 끝나지 않았지만 2024년에 작성했던 버킷리스트를 살펴보면 꽤 많은 것을 이뤘다.
우선 상반기에 부모님을 모시고 목포 여행을 다녀왔고, 여름휴가땐 장모님과 신안을 다녀왔다. 자주란 뚜렷한 기준은 없지만 그래도 시간 될 때마다 찾아뵙고, 연락드리려 노력하고 있다.
출간 계약을 맺고, '사춘기 아들 갱년기 아빠는 성숙해집니다'란 책이 세상에 나왔다. 버킷리스트에 작성했기에 올해 처음으로 투고를 해보았고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무엇보다 아들과 무척 힘들었던 순간을 되돌아보고 현재를 감사할 수 있었다. 책이 나오고 북토크를 하고, 라디오에도 출현하고, 여러 곳에서 원고 청탁을 받아 글도 쓰는 기회도 가져보았다.
운동은 꾸준히 해서 3kg 이상 감량을 했고, 도서관 자원봉사도 계속해오고 있다. 매일글쓰기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고, '인생 책 북클럽' 독서모임에 참여하기에 매월 2권 정도의 책은 읽고 있다. 주 2회 브런치 글쓰기는 라라크루 모임 덕분에 실천 중이다. 감사하게도 '가족 독서모임'을 주제로 도서관 강의도 올해 초 꿈틀도서관을 시작으로 11월에 예정된 고척도서관을 마지막으로 목표를 달성했다. 내년에도 올해처럼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었으면.
브런치북은 '내향인이지만 강의를 합니다', '아재의 도서관 자원봉사 체험기' 이렇게 2편을 발간하고 출판 프로젝트에도 응모 완료했다. '내향인이지만 강의를 합니다'는 글을 좀 더 써서 내년엔 투고도 해볼 생각이다. 아마도 2024년 버킷리스트 최상단에 위치하지 않을까.
팔불출 모임은 코로나 이후 올해 처음으로 부산여행을 다녀왔다. 아쉽게도 형님 한분이 개인사정으로 참여하지 못해 완전체는 아니었지만 앞으로 매년 빠짐없이 여행을 갈 계획이다. 더불어 올해는 특히 주변의 좋은 사람을 자주보고, 만나려 노력했다. 갈수록 사람이 소중하다는 걸 깨닫는다. 이제는 만나서 불편한 사람은 되도록 피하고, 즐겁고 행복한 이만 한 번 더 보려 한다. 좋은 사람만 보고 살아도 인생은 짧기 때문이다.
버킷리스트 최상단에 있는 아내와의 관계는 여전히 냉탕과 온탕을 오가지만 얼마 전부터 대화가 부쩍 늘었다. 최근에 김경호 작가의 '진짜 어른이 되는가 위한 듣기 수업'이란 책을 읽었는데 그 안에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다. 결국 듣는다는 건 상대방에게 관심 갖고 진심을 다한다는 것과 일맥상통했다. 그걸 이제야 깨닫고 실천하는 중이다. 다행히 효과가 있다. 요즘 아내가 전보다 자주 웃고, 함께 하는 순간이 즐거운 걸 보면 분명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중이다. 매월 한 두 번 정도는 둘이서만 저녁도 먹고 공연도 보는 등 따로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아직 달성하지 못한 리스트가 있기에 그건 내년으로 넘겨서 계속 도전해 볼 예정이다. 모든 걸 다 이루면 공허함에 빠질 수 있다 자위하며 내년엔 꼭 이루길 소망해 본다.
꿈이 있다는 건 늘 설레는 일이다. 도전하는 현재를 위해서, 전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서, 늘 살아있는 삶을 위해서 버킷리스트는 내가 존재하는 한 늘 함께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