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부재 속에 신석봉이 되다
아내가 아이들을 남기고 친구와 여행을 떠났다. 며칠 전 일방적인 통보였다. 몇 년간 친구와 다달이 돈을 모았고 드디어 그날이 왔단다. 여행지는 베트남이었다.
아내는 미리 카톡으로 아이들 학원 스케줄을 보냈다. 월요일과 화요일은 아들 학원 보내고 나가야 돼서 10시 출근으로 유연근무를 냈다.
아내 없는 토요일 오전엔 청소와 빨래 등 집안 일로 시작했다. 집은 치운다 해도 늘 어질러지는 건 왜일까.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이다. 나중을 위해서 테이블 위를 깨끗이 정리했다.
점심은 아이들이 알아서 챙겨 먹었다. 대견도 하지. 아들은 컵밥에 스크램블까지 만들어 먹었고, 딸은 아내가 만들고 간 북엇국에 계란프라이를 더해 야무지게 한 끼를 해결했다.
식사를 마치고 아들과 헬스장을 다녀왔다. 건초염이 찾아온 바람에 나는 하체 운동을 아들은 상체 운동을 각자하고 유산소는 함께 러닝머신을 뛰었다. 운동할 때 적극적인 아들 모습은 언제나 낯설고 새롭다. 귀차니즘이 온몸 가득한 녀석이 운동만큼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도통 빠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덩달아 나도 따라가게 되니 고마울 따름이다.
저녁은 아이들이 원한 햄버거를 포장해 갔다. 각자 원하는 햄버거가 있고, 사이드메뉴와 음료까지 다 다르니 오십 줄의 뇌세포가 급격히 줄어든 나로선 쉽지 않은 미션이었다. 결국 아들의 음료를 콜라에서 사이다로 바꾸는 실수를 해버렸다.
설거지를 하는 동안 딸은 방으로 아들은 씻으러 세면장으로 향했다. 얼른 마치고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얼마 전부터 쓰기 시작한 단편 소설이 이제 결말만 남았다. 아들이 나온 순간 오전에 곱게 정리한 테이블로 불렀다. 방에서 주섬주섬 공부거리를 챙겨 테이블 위에 놓았다.
"아빠는 소설을 쓸테니 너는 공부를 시작하거라."
어디서 본 익숙한 멘트 속에 이제는 독서실 총무가 되어 아들과 합을 마쳤다. 아들은 이제 고3이 되었다. 더는 뒤가 없다는 뜻이다. 공부를 해라할바에 내가 먼저 솔선수범 하면 어떨까 싶었다. 소설도 써야 하고, 승진 시험 준비도 해야 하고, 책도 읽어야 하고 때마침 할게 수두록 빽빽이다.
어라 효과가 있네. 내가 글을 쓰는 동안 아들은 차분히 공부를 시작했다. 이 또한 낯선 모습이다. 이것이 시너지 인가. 골머리를 썩였던 소설의 결말도 술술 써졌다. 어느새 아들도 몇 시간째 책과 씨름 중이다.
아내의 부재 속에 나는 신석봉이 떡 대신 글을 썰며 무사히 하루를 보냈다. 내일 저녁은 고기를 먹고 싶다는 요청에 마트에 다녀올 예정이다.
하루 잘 보냈으니 남은 날도 신석봉의 탈을 쓰고 잘해보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