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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람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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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Dec 31. 2019

421.

지독하게 추운 날씨다. 어지간하면 내복 하의는 안 입는데 영하 9도라는 날씨 예보에 서랍 구석 꼭꼭  숨겨 놓은 내복을 챙겨 입었다. 문밖에서부터 느껴지는 한기가 마음까지 무장시킨다. 한 해 넘기는 일이 쉽지 않다.

의미를 두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는 올해 마지막 글쓰기이다. '의미'란 단어는 나에게 중요하다. '빅터 프랭클린 박사는 그의 저서 '죽음의 수용소'에서 의미가 삶에 주는 영향을 몸소 보여주었다. 오늘 하루쯤, 그 의미를 난발해도 괜찮을 것 같다.

어떤 이의 글을 읽었다. 글 쓰는 지금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며칠 전 아내의 잔소리가 떠올랐다. 의자에 앉아 열심히 손을 조물거리는 나에게 뭐가 그리 좋냐는 핀잔을 보냈다. 글 쓰면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다. 이렇게 해야 지란 의도성이 배제된 불수의근이다. 뇌는 가짜 웃음을 구별하지 못하고 안면 근육의 수축을 감지하면 행복하다고 인식한다고 한다.

그 순간만은 세상이 주는 어려운 메시지를 새까맣게 까먹는다. 온전히 글 안에 '나'로 존재한다. 어떨 땐 나로 정형화된 모습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가 있다. 글을 쓸 땐 내가 되기도, 아니기도 하다. 그 아슬한 경계선에서 있다. 그래서 좋은 걸까. 조금씩 희미해져 가는 나의 존재가 글 쓰며 새롭게 그려지고 있다.

2019년 12월 31일. 매일 기록한  421가지 소중한 의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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