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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Jan 07. 2020

다이어리

1월이 일주일이 지났건만, 다이어리를 사지 못했다. 몇 년간 꾸준히 손으로 기록했던 일상이 잠시 개점휴업 중이다. 마음 한구석에 아쉬움이 남았다. 다이어리에 쓰는 기록은 지극히 개인적이다.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글 아니기에 지질한 마음도 편하게 담을 수 있다.

일기도 쓰기 싫어하던 내가 손맛을 알게 된 후론 쓰기에 열중했다. 하얀 백지 위에 내 글이 담겨 까맣게 변해갈수록 마음도 위로받았다. 어느새 심란할 땐 다이어리부터 찾았다. 한 해가 끝날 때쯤엔 손때로 누르스름해진 모습을 보며 남몰래 뿌듯해하기도 했다. 다시 꺼내 볼 것도 아니면서 비밀 공간에 차곡하게 쌓아 놓았다.

기록이 끝난 작년 하반기부터 책상 열 때마다 보이는 다이어리를 애써 외면했다. 미안. 어쩔 수 없어. 나는 지금 삶이 벅차. 너까지 신경 쓰기에는.... 누가 누굴 벅차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나의 벅참을 아무 말 없이 담아주던 고마움은 모두 잊은 체 이기적이다. 그렇게 서서히 잊어가며 미안함을 덜어냈다.

지난 주말 부모님 댁에서 어머니가 다이어리를 건넸다. 경품으로 받으셨다는데 쓰겠냐는 말에 잠시 망설였다. 이미 깡그리 잊어버렸는데 굳이 왜라는 물음이 찾아왔다. 고민하며 받았다. 아직 뜯지도 않아서 하얀 비닐 속에서 갇힌 체 뚫어지게 나를 쳐다보았다.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물었다.

"어머니께 받았는데 다이어리 쓸래?"
"아니. 내가 전에 다이어리 쓰는 것 보았어?"

물음에 물음으로 답하니 할 말을 잃었다. 그렇게 내 손엔 벗어나지 못한 다이어리가 남았다.

오늘 출근길, 테이블에 놓인 다이어리를 개봉했다. 그리곤 첫 문장을 적었다. 요즘 나를 몹시 흔드는 바람을 적었다. 느낌일까. 그 바람이 잦아들었다. 가져가서 써볼까. 손에 들었다 놓기를 몇 번 한 뒤 그냥 두고 나왔다.

가져올 걸 그랬나. 괜히 빈손만 쳐다보는 나.

내일은 가져와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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