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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어 넥스트 헤븐 - 당연함, 천국은 옆에 있음

그 한 발자국을, 지옥을 향해 내디딘다. 알면서도.

by hsirehc


대학로 카페 CIRCA1950에 들어섰을 때, 나는 작은 극장이 카페 한편에 마련되어 있을 거라 예상했다.

그러나 카페 중앙에 덩그러니 놓인 긴 바 테이블과 구석구석 배치된 스툴들이 전부 관객석이었고, 장식용인 줄만 알았던 소품들은 모두 무대 장치였다.

'컨템포러리 테일즈'의 창작극 '도어 넥스트 헤븐'은 이렇게 관객과 무대의 경계를 허물며 시작되었다.

연극의 매력이 현장감과 생동감에 있다고들 말하지만, 이 작품은 그 이상이었다.

배우가 내 옆자리에 앉았고, 대사는 관객의 바로 앞에서 터져 나왔다. 생동감을 넘은 실체감이었다. 마치 내가 그 자리에서 함께 대화하고 있는 듯한, 그들의 시간 속에 침투해 버린 듯한 착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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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꿈속에 있는 듯 몽롱한 젊은 카페 사장의 독백으로 시작된다.

싱어송라이터를 꿈꾸는 사장, 그 옆을 맴돌며 숙식을 함께하고 카페 일을 돕는 청년. 청년은 사장에게 조건 없이 멋진 곡을 써주었고, 사장은 점점 그 선의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어느 날, 청년은 묻는다. "악마를 믿어요?”라고. 그리고 계약을 제안한다.

사장은 곡을 계속 받는 조건으로, 청년은 오로지 사장이 자기 옆에 있어 주는 것만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오랜 논의 끝에, 둘은 계약을 맺기로 하고 청년—이자 악마—은 천국의 물을 내밀며 함께 마시자고 한다. 하지만 사장은 끝내 믿지 못해 잔을 던져버리고, 청년은 크게 실망한다.


시간이 흘러, 한참 뒤 라디오에서는 안내가 흘러나온다. 자작곡 '도어 넥스트 헤븐'으로 단숨에 일약 스타덤에 오른 사장의 죽음을 암시하는 듯한 음성. 청년은 처음 연극이 시작된 시간적, 공간적 배경으로 모든 것을 되돌려놓으며 연극은 막을 내린다.


아마 젊은 카페 사장은 또다시 몽롱한 꿈속에서 헤매듯 거리를 배회할 것이다. 그리곤 청년과 다투고, 계약을 논하고, 어떠한 선택을 할 것이다. 이 꿈은 영원히 반복될 것이다.

악마는 단 한 번이라도 사장이 자신을 믿어주는 오차를 범하길 바라며, 계속해서 같은 계약을 제안할 것이다. 함께 있고 싶다는, 그 하나의 목적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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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or Next Heaven, Door Next Heaven / 우린 천국 바로 옆에서 영원히, 영원히


사랑과 믿음으로 함께했다면 천국에서 영원을 누릴 수 있었던 두 사람이, 오해와 의심, 이기심에 휩싸여 파멸을 맞이하는 순간 흐르던 이 노래는 자조와 애잔함으로 가득했다. 천국과 지옥은 정 반대편에 있을 것 같지만, 사실은 바로 옆에, 벽 하나 너머에 존재했다. 이 연극이 제시하는 가장 날카로운 통찰이 여기 있었다.


믿음의 바로 옆에는 의심이, 배려의 바로 옆에는 이기심이 있다. 선과 악, 사랑과 증오, 믿음과 배신은 이분법적으로 나뉠 수 없는 것들이며, 우리 삶에서 하나로 공존하는 관계일 뿐이다. 영원한 사랑을 위해서라면 관계에 목적이 있어도 상관없다고 믿었던 청년은, 사장이 그 관계를 저버리자 사라졌다. 둘의 관계가 '계약'으로 맺어지는 거였냐고, '필요'에 의한 관계였냐고 자조하던 사장은 결국 자신의 명예를 위해 청년을 도구로 삼았다. 우리가 선택하는 모든 것들은 맞은편이 아니라 바로 옆에 머물러 있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이 아이러니함을 관객과 함께 고민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우리도 항상 행복의 옆에서, 사랑의 옆에서 맴돌다가 결국 그것을 놓치는 선택을 반복하고 마는 것은 아닐까. 사장이 문득 자조한 독백처럼 말이다. 잘못된 선택임을 알면서도 하게 될 때가 있지 않냐고. 알면서도 하게 되는 때가 있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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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너무 사랑하는 것들을 꽉 쥐어 손안에서 부순다. 더는 사랑할 수 없는 모습이 될 때까지 붙들고 있는다.

'도어 넥스트 헤븐'은 바로 여기서 시작했다. 어느 순간이, 어떤 관계가 너무 소중해지면 우리는 지금 이대로 영원히 아무것도 변하지 않기를 바라게 된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두 인물은 원하는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에 사로잡혀, 자신을 망가뜨리는 선택을 반복했다.


청년의 독백이 인상 깊다. "당신은 당신이 만든 것이 아닌 것들로 사랑받아 불행하고,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함께 있어 불행하다"라고.


두 사람 모두 불행했다. 하지만 그 불행은 서로를 향한 것이 아니라, 각자가 스스로에게 가한 것이었다. 청년의 무조건적 헌신은 사랑이었을까, 집착이었을까. 사장의 의심은 경계심이었을까, 두려움이었을까.

이 질문들에는 명확한 답이 없다. 그것이 바로 옆에 있기 때문이다. 선택의 순간마다, 우리는 한 발자국만 옆으로 가면 천국이지만, 그 한 발자국을, 지옥을 향해 내디딘다. 알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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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끝나고 카페를 나서면서도, 나는 그들이 여전히 그 안에서 같은 대화를 반복하고 있을 것만 같았다. 악마는 다시 계약을 제안하고, 사장은 다시 의심하고, 다시 잔을 던지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것이다.

이 반복이 저주처럼 느껴지는 동시에, 묘하게도 희망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언젠가는, 단 한 번이라도, 사장이 믿어줄 수도 있지 않을까. 그 한 번의 오차가 이 지옥을 천국으로 바꿀 수 있지 않을까.


결국 '도어 넥스트 헤븐'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였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소중한 순간 앞에서, 우리는 얼마나 자주 지옥 쪽으로 한 발을 내딛는가. 천국은 바로 옆에 있는데 말이다.

이 작품이 제시하는 것은 답이 아니라 질문이다. 그리고 그 질문은 공연이 끝난 후에도, 카페를 나선 후에도, 오랫동안 관객의 곁에 머물렀다.


공연 정보

연극 '도어 넥스트 헤븐'

일시 : 2025년 10월 24일 ~ 12월 21일

장소 : 대학로 카페 CIRCA1950

제작 : 컨템포러리 테일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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